커버스토리 / 허영자

 

 

 

강인함과 부드러움, 그 아름다운 조율

 

 

 

김유선

(시인·장안대 교수)

 

 

 

 

 

한 시인을 평가하는 전통적인 방법 중의 하나는 그의 작품 속에 잊어버릴래야 잊어버릴 수 없는 시행(詩行)이 얼마나 많은지를 살피는 일이라고 C. D. 루이스는 말한다. 이 말에 의존한다면 허영자 시인만큼 성공한 시인도 드물 듯하다.

 

'어여쁨이야/ 어찌/ 꽃뿐이랴'

'죄에서조차/ 푸른/ 미나리 내음난다'

'휘발유같은/ 여자이고 싶다'

'가슴엔 듯 눈엔 듯'

'젊은 날/ 떫고 비리던 내 피도/ 단감으로 익을 수밖에는'

'먹어도 먹어도/ 배고픈 시장기'

'죽은 나무도 생피 붙을 듯/ 죄스런 봄날' 등등등.

 

'그 이름을 살 속에 새긴다' 시 <親展>의 그 자신의 싯귀에서처럼 시인은 그가 다듬고 깎아내고 수놓고 토해낸 싯귀들을 우리 시문학 여정 갈피갈피에 새기어 놓고 있다. 대학과 문단의 한참 후배여서 제자격인 나는 그런 시인이 부럽다.

이 시인은 어느 때 누구 앞에서나 당당함을 잃지 않아 나는 또 부럽다. 그녀의 당당함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얼마 전까지만해도 45킬로그람을 넘지 못하는,요즈음에는 조금 더 늘었다고는 하지만,그 갈랄갈랑한 몸매며 몸짓은 오히려 가냘프고 애처롭기까지 아니하던가.  그런데 그녀는 당당하면서도 겸손하다. 나같은 한참 후배에게도 어찌나 사근사근 겸손하신지 나는 자주 황감해지곤 한다. 그러나 그녀의 나긋나긋한 말씨 속에는 단호한 서슬이 서려있다.  정당하지 못하고 옳지 못하다고 생각되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 앞에서나 그녀의 그 서슬기는 거침없이 나온다.

"그렇기도 합니다마는"

평소 얼굴 표정이 크게 변화하지 않는 편이지만 다소 정색한 몸가짐으로 자주 그녀는 이렇게 말문을 연다. 단어 하나하나에 힘이 가는 정확한 발음이다. 남산골 선비의 카랑카랑함이 묻어나온다. 이럴 때 그녀의 말씨에는 고향인 경상남도 함양의 사투리가 전혀 들어가지 않는다. 상대편은 다소 긴장하게 되고 그녀는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펼친다. 그래서 그녀는 어느 자리에서나 꼿꼿해 보인다. 그녀는 강한 바람 속에서는 더 굳건해진다. 외유내강이 아니라 외유내유하고 외강내강하다. 강자 앞에서 더 강해진다. 단단한 그릇은 깨지기 쉬운 법. 꼿꼿이 세운 그녀의 허리뼈가 쓰러진다. 그러나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그녀를 갈대같다고 생각한다. 다시 일어서기 때문이다. 그녀에게서 나긋나긋한 면과 만난 사람은 그녀를 아아주 부드러운,그야말로 여성 중에 여성스러운 여성으로만 알고 가고,그녀의 단호한 면과 만난 사람은 그녀를 야멸찬 여자로만 보고 간다. 그러나 이 둘은 그녀 안에 선후와 경중이 없이 거의 같은 비율로 섞여 있다. 그녀의 나긋나긋함을 나는 사람에 대한 애정과 예절을 아끼는 그녀의 삶의 태도로 읽어낸다. 눈밭에 고개드는 새파란 팟종같은 그녀의 단호한 태도는 그가 지향하는 이성과 지성의 사회적 잣대에 충실하려는 성실성으로 내나름대로 읽는다. 그녀 시에서 이 올곧성은 그대로 드러난다.

 

돌틈에서 솟아나는

하늘한 샘물처럼

 

눈밭에 고개 드는

새파란 팟종처럼

 

그렇게

맑게

 

그렇게

매웁게

- <무제>

 

위의 시에서처럼  그 자신에게 '맑게'와 '매웁게'는 그녀 인생에 중심어로 자리잡고 있는 듯하다. 그녀는 부드러우면서 강건하다. 견고하면서도 연약하다. 허리 넘어질 듯 나긋하면서도 꼿꼿하다. 겸손하면서도 겁나게 당당하다.

그녀의 당당함은 정직성에서 오는 듯도하다. 그녀는 정직하고 또 솔직하다. 솔직하려고 애쓰는 것으로 보인다. 다른 이에게 보내는 칭찬이나 찬사는 그녀의 눈에 그렇게 비쳤기 때문이다. 현모양처라든지 신사라든지 하는 그녀의 표현은 그녀 스스로 채점기준이 있기 때문이다. 유우머를 즐기고 천연스레 농담을 만들어내지만 나는 그것을 문학당의정설 비슴하게 읽는다. 위선의 또다른 얼굴이 아니라 내용에 정성을 담아내는 선물포장같은 것. 그녀에게는 선물포장도 내용만큼의,그 일부의 비중이니까. 말이 나왔으니까 생각난다. 지난 늦가을이던가. 그녀가 중심이 되고 있는 '운현궁 시낭송회' 어느 날,자주 간식을 준비해오는 그녀는 그 날도 아름다운 꽃바구니를 들고 왔다. 바구니 속에는 꽃대신 하나하나 색색 리본으로 예쁘게 포장된 삶은 달걀 더미가 소복했다. 포장지를 풀어내며 우리는 그 융숭한 접대에 잠시 행복해했다. 그녀에게 포장은 위장이 아니고,허위가 아니다. 그 어여쁜 포장지처럼 그녀는 딱딱하고 강건한 본성을 중화시키려는 노력의 꿀물을 늘상 준비하는 것이다. 설탕물이 아니라 지극한 정성으로 은쟁반에 꿀물을 준비하는 것이다. 그 반대일지도 모른다. 그녀 본성의 물르고 연약한 내면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강건한 가림대를 내세우는 것인지도. 아니다. 부드러움과 강인함,따뜻함과 차가움 이 둘의 혼융이 그녀에게는 자연스럽다. 시인에게 확인해보리라. 그녀는 후배의 버릇없는 질문이나 답변에 개방적인 선배였으니까. 솔직하고 순수하다고 생각되면 그녀는 대부분 수용하고 있으니까. 왜 헤어졌어요? 왜 만났어요? 왜 그러셨어요? 식의 건방진 질문도 할 수 있는 선배였으니까. 더 서슴치 않는 질문이나 권유에도 그녀는 마음을 열어놓았으니까. 솔직성과 순수성 앞에서 그녀는 부드러웠으니까. 그녀가 냉혹해지며 스스로 아파하는 연유를 나는 알고 있으니까. 내가 알고 있다고 내가 생각하고 있으니까.

그녀는 시며 산문에서도 매우 솔직하다. 그녀는 자신의 실수나 과오에 솔직하다. 사랑의 시를 읽으면 더욱 그렇다. 그런데 솔직한 그녀는 허물리지 않고, 쓰러지지 않는다. 그렇게 말하는 그녀는 더 단단하고 견고해 보인다. 그녀의 그러한 솔직성이 나는 부럽다. 거기에는 용기와 자신만만함이 내포되어 있으니까. 그녀는 용기도 없고 자신감도 없어 뒷켠에 쳐진다고 말하지만 아니다. 상대성 원리에 의해 남보다 그녀는 조금 더 그렇다. 그렇게 보인다.

 

그녀는 어느 시대에나 소수의 독자를 가질 수 있기를 염원하는 엘리엇의 생각에 동조하는 많은 시인들의 시기를 받을 만도하다. 박목월 선생 추천으로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한 1961년 이미 그 시기부터 작금까지 이 시인의 독자는 꾸준하다. 시인의 독자층은 다양해서 연령이나 지식, 학력, 성별 등에서 어느 한 층에 머무르지 않고 있다.

필자의 오해가 아니라면 이 점은 그녀 인생에서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그녀 주위에는 어여쁜 꽃으로 그녀를 탐미하거나, 그녀를 멀찍이서 연연해하거나, 혹은 그녀의 미나리향을 동경하는 몇몇이 늘 서성인다. 한 명의 연인이기는 보다는 여럿의 연인이다. 상대편은 자기 하나만으로 착각한다.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성실성과 정성이 그렇게 생각하게 만든다. 그녀 자신의 성실설과 정직성 때문에 그는 타인에게도 그것만큼의 중량을 기대하는 것같다. 그래서 그녀는 자주 상처를 받고 괴로워한다. 그래서 고독하다. 주변에 사랑하는 이들이 있는데도 고독하다. 그렇게 보인다. 내색하지 않지만 그렇게 읽힌다.

20대부터 육순을 넘은 근래까지도 여전히 그녀 주위에서 맴도는 싱그러운 향기는 시인이 살고있는 그림같은 성북동 한옥의 담 안을 들여다보면 쉽게 수긍이 간다. 그녀의 집에서 그녀를 보면 그녀는 여자다. 정말 여자다. 그녀는 스스로 매우 남성적이라고 말하지만 그녀를 아는 누구도 그 말에 수긍하지 않는다. 그녀가 염원하는 가장 여성스러움의 수치에서 부족하다고 생각되어 스스로 평점내린 결과의 발언이라고 나는 그 말을 내 나름으로 독해한다.

그녀는 솜씨와 마음씨 그리고 말씨와 맵씨가 맛갈스런 여자다. 사랑스런 여자다. 이 글의 지칭어에서 나도 모르게 '그녀'를 자주 사용하게 된 점도 그 때문이리라. 그녀는 사람을 아끼듯 물건을 아낀다. 남들이 내다버린 물건도 그녀 집에서는 윤이 나고 빛이 난다. 어디서 주워왔다는 현관 앞 가마솥에는 봄부터 늦가을까지 베고니아꽃이 그녀가 숨기고 있는 정열처럼 붉다. 현관문을 밀면 소나무와 감나무와 물봉숭아며 베고니아를 풍만하게 안고 있는 돌확이 적당히 배치된 아담한 정원이 손님을 반긴다. 투박한 무쇠솥안에서 석창포가 늠늠하다. 이상하게도 그녀 집의 화초들은 싱그럽고 풍요하다. 생명에 대한 그녀의 정성이리라. 빵 한덩이를 소중히 여기지만 빵 대신에 꽃 한송이를 택할 줄 아는 그녀이니까.

그녀 집에 들어서면 늘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손님을 기다리는 분위기에 접한다. 누구를 기다리는 걸까. 그녀가 기다리고 있는 것을 그는 알고 있을까. 그녀의 다탁에는 녹차와 홍차와 커피가 아주 친하게 어울린다. 손수 구운 쿠키와 한과(韓菓)가 언제든지 준비완료 상태다. 그 담긴 그릇도 예술이다. 전통적인 것과 서구적인 것을 절묘하게 혼합시킨다. 골통품과 유럽의 물건들이 서로 다정하다. 그녀의 안목이다. 최상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려는 그녀의 취향이다. 동서양의 혼융은 그녀 의상에서도 그렇다. 그녀는 지금도 4,50년 전에나 유행했을 남색 모본단 양단 통치마에 그 시절 옷태 그대로를 즐겨 입는다. 가끔 입는 그녀의 개량 한복은 기품있다. 그러다가도 어느 날 그녀는 파리 어느 거리에서도 손색없는 도시적 멋쟁이가 된다. 검은 색과 빨간 색이 어울리고 흰색과 보라색도 그녀는 즐긴다. 숙명여대 재학시절였던가. 문학의 밤에 선배 시인으로 초청된 그녀는 그 옛 검은 빛 통치마 한복에 당시에는 거의 보기 힘든 만토를 걸치고 나타나 뭇 시선을 받았는데,만토가 흔해진 요즈음 그녀가 만토입은 모습은 본 적이 없다. 근래 몇 년 사이 그녀 옷차림은 무게있는 쪽으로 변하고 있다. 그래도 남다르다. 모자 하나를 써도 그녀는 품위있다.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인다. 결코 사치스럽지 않으면서 기품있게 화려하다. 60 넘은 나이에 치렁치렁 휘날리는 노란 머리채 때문일까. 이국적인 얼굴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니다. 그보다는 그녀 내면의 화려함때문이리라. 아름다운 것, 최상의 것을 탐미하는 그녀 내면의 유미주의적 식욕때문이리라. 스타킹의 나간 올을 기워신고, 유행이 다 지난 10년 전 구두를 신어도 그녀는 여전히 화려하고 멋쟁이다. 목걸이, 귀걸이같은 장식을 즐겨하지 않는 그녀는 절제된 시형식을 고집하는 그녀의 시와 너무나 닮았다. 꾸미지 않는 멋은 최대의 꾸밈이다. 그래서 다른 여늬 여성들과 다르다. 어느 인파 속에서도 눈에 띤다. 그녀만이 지닌 개성과 창의성을 중요시 여기는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그녀는 시인이다. 평범한 시인이 아니라 특별한 시인이다.

찻잔 밑에는 그녀가 수놓아 만든 찻상보가 깔려있다. 솜씨가 맵고 깔끔하다. 추은희 시인은 그런 그녀를 매구같다고 놀린다. 신달자 시인은 어느 남정네가 받아야 할 대접을 우리같은 여편네가 받는다고 또 그녀를 놀린다. 그녀가 행복하게 웃는다. 어느 남정네에게도 그녀는 이렇게 대접하리라. 그가 누구건간에 그녀 집에 온 객은 모두 그녀의 연인이 되고 남정네가 되고 마니까. 그런 기분이 들게 하니까. 그녀는 직접 수놓은 보자기를 지인에게 나눠주기도 한다. 색체 배합이나 디자인을 보면서 받는 사람은 놀란다. 그녀는 스스로 옷을 만들어 입기도 하고 돌돌돌돌 밤새 재봉틀을 돌려 만든 고무줄 넣은 치마며 실내복을 가까운 이들에게 선물하기도 한다. 천조각이 남아서… 하고 그녀는 말끝을 흐리지만 그녀의 사랑과 정성이다. 맵고 짠 그녀의 솜씨이며 맵씨이다. 그녀의 시(詩)틀이 보여주는 맵고 짠 형틀 그대로다. 꼿꼿하게 허리를 세우는 말씨 그대로다. 그녀를 만난 후의 여운은 오래간다.

 

그녀는 완벽성을 추구한다. 그렇게 보인다. 자신에게 늘상 그렇게 채찍질하기에 그녀는 언제나 바쁘고 그래서 고달프다. 그녀는 그 고달픔을 즐긴다. 완성의 기쁨을 즐기기 때문이다. 15년도 더 전인가 그녀가 숙대 동창회보의 주간으로 있을 때로 기억된다. 그때만해도 컴퓨터 활자가 아니라 문선공이 일일이 활자를 뽑고 판을 잘 때라서 글자 한 자가 더 들어가거나 빠져도 전체 판을 다시 짜야 되었다. 신문이라서 그냥 넘어가도 될 법한대도 그녀는 아니었다. 문선하는 아저씨들 눈치가 보여도 그녀는 흔들리지 않았고,퇴근 시간에 임박해도 그녀는 초연했다. 깎듯하고 단호한 음성으로 그녀는 고칠 것을 고쳤다. 그 몇 년 나는 참 많은 것을 배웠다. 그녀의 그런 완벽성은 그녀가 하는 일 곳곳에서 충돌을 일으키고 오해를 빚기도 하지만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 그래서 함께 일하던 사람은 나중에야 고개를 끄떡이게 된다. 가끔 그녀는 할 수 없지요 하며 고집을 포기한다. 그럴 때 그녀는 마음 속으로 갈릴레오처럼 읊조리는 것 같다. 그래도 아닌데, 지구는 돌고 있는데. 그녀의 완벽성은 사람 관계에서도 그렇다. 대강 삶을 만나는 법이 없다. 최선을 다한다.  그녀의 완벽성은 무엇보다도 시에서 아주 잘 나타난다. 그녀의 시 어느 편도 군더더기가 없다. 적재적소에 놓인 그녀 집안의 집기들처럼. 그녀의 싯귀는 벼룩시장과 백화점에서 골라낸 최적의 언어로 짜여진다. 남의 눈에는 뜨이지도 않던 언어조각들이 그녀의 시(詩)자리에 와서 빛을 내고 윤을 내는 명품이 되는 것이다.

냉혹하리만큼의 완벽성을 추구하면서도 그녀는 여유가 있다. 그녀는 서둘러 걷지 않는다. 여유가 있는 15도 정도의 팔자 걸음이다. 그녀는 차향을 즐기듯 천천히 음미하며 인사동 길을 걷는다. 수백 번도 더 걸었을 그 길을 처음 구경하는 것처럼 하나하나를 눈에 담으며 느긋이 즐긴다. 보는 것으로 즐길 줄 알고 흡족해한다. 약속시간에 임박해도 그녀의 걸음새는 변하지 않는다. 경황없는 틈새에도 불쑥불쑥 유우머를 던지는 그녀의 화법과 같다. 그럴 때면 그녀의 말씨는 휘휘 늘어지는 수양버들이다. 걷다가 어린아이를 보면 그냥 지나치지를 못한다. 몇 마디 말을 나누고야 만다. 그와 여행하다 보면 그런 그를 자주 만난다. 지나가는 할머니와 아저씨와 할아버지와 애기들과 서슴없이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그녀와 여행하노라면 더 많이, 더 넓게, 더 깊게 볼 수 있어 좋다. 안본 곳은 말할 것도 없고, 이미 본 것이나 본 것들도 그녀는 다시 둘러본다. 그러면서도 늘 상대편을 조심스레 배려한다. 덕분에 그녀와의 여행은 풍요롭고 유쾌하다. 그래도 그녀는 놓친 많은 것들을 아쉬어하며 다음을 기약한다. 나는 그런 그녀의 면면을 그녀 본성의 지적 호기심과 세상사의 관심으로 읽는다. 팽팽한 현악기의 줄을 튕기면 아름다운 소리가 난다. 그것이 그녀다.

그녀는 시쓰는 일을 업보인 것같다고 어느 글에서 밝히고 있다. 시에서나 사람에게나 그리고 삶의 곳곳에서 그녀는 남발하지 않고 인색하지 않다. 절제하면서 윤택하다. 말을 아끼고 사람을 아낀다.

그런 그녀가 근래 시에서 자신의 견고함에 대한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귀뚜라미/ 귀뚜라미/ 울지 말아라//

네그리/ 하 애달피/ 목메이면//

얼음같은/ 내 마음도/ 금가려 한다//

차돌같은/ 내 마음도/ 깨지려 한다//

- <귀뚜라미>

 

견고함에 변화가 온다면 그 점은 아쉽고도 다행한 일이다. 상처를 덜 받고 고달픔도 줄어들 것이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은 아직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녀가 한국시인협회 회장직을 맡게 되었다는 소식이 들린다. 그녀는 그 일도 그녀답게 맵고 짜고 여유롭게 그리고 미나리향을 풍기며 해내리라. 지금까지의 생에서 보여준 것처럼 감성과 이성, 강인함과 부드러움, 완벽과 여유의 적절한 조율로 현을 팽팽히 당겨 아름다운 운율을 연주해 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