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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문정희

  

 

 

아름다운 맹수를 꿈꾸기

─ 銀장신구·니트·머플러·검정 그리고 여행

 

 

 

김강태

 

 

우리가 날마다 작고 슬픈 밥솥에다

쌀을 씻어 헹구고 있는 사이

─ <아름다운 곳> 부분

 

 

 

문정희. 욕망이 언뜻언뜻 이는, 활화산 같은 집시의 여자. 언제 휴지기에 들어갈지 도저히 알 수 없는 그녀의 ‘아름다운 곳’을 가슴으로 더듬어 나가던 나는, 이 구절을 발견하고 한참동안 망설이고 만다. ‘작고 슬픈 밥솥’이라니. 어처구니없는, 찡한 시구와의 싱싱한 만남이었다. 그때 나는 밥풀떼기 한 알에 집착해 있었다. …시는 계속되고 있다.

 

보아라, 죽어서 땅에 떨어진

저 가느다란 풀잎에

푸르고 생생한 기적이 돌아왔다

 

나는 티비 화면을 통해서 노신사 황장엽이 오랫동안 머물다 온 북의 실상을 보았고 저들의 실상을 재확인한 상태였다. 5살짜리 쯤 돼뵈는 아이 하나가 무언가를 찾아 강둑으로 난 길을 울면서 간다. 아이는 쓰러지다가 일어서다가를 반복하지만, 저 멀리 엄마인 듯한 여성이 망태기 같은 걸 메고 잰 걸음으로 길을 내쳐간다, 아이가 운다, 엄마도 눈물을 훔친다, 엄마는 울면서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매정하게 내닫는다, 밥풀떼기 하나를 위해. 순간, 두만강 가의 조선족이 버린 쓰레기 비닐 봉지가 클로즈업 되면서 겉에 묻은 한 개의 밥알―을 깡마른 여성이 떼어먹는 장면이 연출된다…. 인간이 먹을 ‘짐승용 옥수수 사료’도 없다는 북의 실상은 이토록 충격 자체다.

아이는 다시 쓰러진다, 배고프다, 울지도 못한다, 아이는…. 그러므로 여느 애들 사이에서 먹어도 된다는 빨간 흙을 손가락으로 파먹을 거고, 외국 기자가 목격한 것처럼 항문이 막혀 그 애도 곧 죽으리라, 배 고프므로. 당신 알지? 고픔에 대해. 고픔이 얼마나 아프다는 걸. 나보다 이미 일찍 어른이 된 어린 奇형도가 그랬을까. 어릴 때 <엄마 걱정>(전문)을 이 시처럼 아프게 했던 걸까.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춧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기형도 사진을 본다. 그는 궁상이야. 미안해. 이 궁窮은 빈貧과 통하데. 貧이 ‘奇’에겐 기이奇異한 ‘쓸쓸’로 다가온다, 짙은 소슬·외로움으로. 그랬어.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 당신의 줁70년대와 줁80년대 초반이 똑같았지. 정희 씨. 어때, 당신은…. 그런데 놀라운 게 있어. 대화 중에 나는 그녀 삶의 한 고비를 물으며 느낀 바가 있었다. 그녀의 여행지 내음이 무수히, 하늘을 덮은 히치 콕의 까아만 새떼처럼 내 닫힌 의식의 세계로 풍겨오면서 궁핍에 대한 의식의 혼란과 혼재를 지금 겪고 있다.

문정희, 그녀는 위험한 여자요, 늘 튀는 여자다. 관습을 싫어하고 일상에서 언제고 탈출을 꿈꾸는, 눈빛에 생생한 직선直線이 서는 여자다. 그 나이에 아직도 눈에 날이 서다니! 본격적으로 그녀 문학의 전반부는 5월 광주 의거로 거슬러 간다. 줁79년에서 줁80년 사이, 17년 차이의 오빠가 방글라데시 대사로 있을 때, 마침 《여성동아》 주최의 불교국 순례에 동행하게 된다. 최초의 해외여행이었다. 태국의 열대꽃들이 마약의 향을 뿌려대서 취하고, 방글라데시에서 본 맨발의 거지떼들, 네팔·갠지스 강가에서 치르는 장례의식에서 아들인 듯한 청년이 아비 주검을 보고 터뜨린 큰 울음에 동질성을 발견하곤 도저히 연민을 떨칠 수 없었다. 섬세한, 날카로운 수리검이 날아지르는, 탄력적 아픔이 가슴 저변으로부터 솟아나 몸을 가누기가 힘들었던 기억. 저들 가난의 극한 상황을 목도하면서 정희는 진실로 ‘너무 잘못 살아왔다’는 자책에 휩싸인다. 저들은 가난을 운명으로 생각하고 당연한 일로 수용하는 듯했지만, 숫자 개념조차 거의 없는 태도에 귀국 즉시 그녀는 쓸데없는 것으로부터의 탈출을 시도한다.

사물(물질)의 집착으로부터 떠나자, 눈을 돌리자, 가난한 자들을 위한 꿈꾸기를 비로소 시도하자! 우선은 식단을 단순히 개조한 것. 언급할 것도 없지만, 때로 먹는 것에의 집착이란 진정 부끄러운 일이었고 또 지금 그녀에겐 할 일이 너무 많다. 눈물겹기에도 분주하다. 물질에의 새로운 눈뜨기로 홀연히 독백한다, 지금까지 너무 많은 혜택을 누려왔어, 라는 참회의 넉두리. 정희는 말한다. ‘시는 내게 있어 목적이 아니라 정열이며 또한 직업이 아니라 건강이다. 나의 하루는 언제나 나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필사의 싸움으로부터 시작된다’고. 그래서 어느날 문득 지금까지 잘 길들여진 언어들과 결별을 위한 몸부림에 젖는다.

그건 다행히도 시의 본질에 접근하는 계기로 직결되었고, 그때마다 조금씩 경이로운 발견을 할 수 있었다. 그로부터 2년 뒤 줁82년 8월, 부부는 2년 동안의 뉴욕 생활에 접어들고 오법안 스님의 배려로 그녀는 뉴욕대학 종교교육과 석사 과정에 입학한다. 거기서 만난 철학과 닥터 탐슨 교수는 할머니지만 정희에게 많은 관심과 사랑을 보냈다. 할머니는 한국 소녀를 딸로 입양, 다시 부산으로 시집 보낸 뜻있는 분이었다. 정희는 거기서 세계어인 영어에 대한 컴플렉스에 빠진다. 단순한 대화로 겁없이 뽐낸 자신이 아니었을까, 오히려 준비해간 영어에 자신감을 잃으면서 때아닌 고생을 하게 된다. 그리니치 빌리지와 워싱턴 스퀘어 가든을 오가면서 부부는 가난한 유학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고, 피붙이 아이들은 머리에 이蝨까지 옮는 끔찍한 수난을 당한다.

그러나 정작으로 <예술고고학>에 관심을 가진 그녀는 탐슨 교수의 아쉬운 만류에도 불구하고 어렵사리 전과, 1년동안 예술학을 정식 스케쥴로 공부한다. 아웃 스케쥴은 영화 관람. 뉴욕 영화클럽 회원으로 무려 300여편을 감상하고 브로드웨이에서는 수많은 뮤지컬을 감상하는 초인적 힘을 발휘한다. 실상, 그녀의 교양미나 깊이있는 객관적 안목은 거기서 비롯한 것으로, 저명한 영화감독 마졸린을 알았고 세계적인 앵커 우먼이자 통큰 여자인 바바라 월터스도 화면을 통해서나마 자주 접할 수 있었다. 정희는 바바라에게 반해버린다. 찬 바람부는 모스크바 광장의 안개를 맞으며 전 세계인들에게 브리핑하는 그녀의 환상적 모습에.

그녀는 싫증을 잘 내는 편이다. 대체로 부정의 정신이 강한 편이지만, 딱 하나, 글쓰기만큼은 결코 그렇지 않다. 그녀가 맏며느리라는 점은 뜻밖. 대가족 제도 하의 모임터 정읍에서 수차례의 거창한 제사를 준비하는 억척스러움도 보인다. 어린 시절의 정희에게로 돌아가자.

 

그 시절

당산나무 건너 새로 지은 분교에는

가방을 멘 아이가 나 하나뿐이어서

아이들은 언제나 나를

벌떼처럼 둘러싸았지

 

“똥가방 똥가방”

“얼레꼴레 똥가방 멨다네”

 

검정 무명 책보에

양철 필통 하나 둘둘 말아

허리에 동여맨 아이들은

내가 멘 가죽 가방에 손가락질했지

푸른 연기 내뿜는 기선이 그려져 있고

송진 냄새 향긋한

내 가죽 가방에

어떤 놈은 칼자국을 내고

침도 묻혔지

 

그런데 이상한 일이야

나는 지금도 그 가방을 메고 있어,툭하면 그걸 메고 홀로 서 있어

─ <책보와 가방> 부분

 

어릴 때 가죽 가방을 멘 정희는 무명 책보를 멘 아이들 틈 속에서 툭 불거진다. 마치 군계일학이랄까, 그녀는 닭과 오리 등의 가금家禽 속에 낀 한 마리 공작처럼 도드라져 보이지만 그들과는 정작 어울리지 못하고 쭈뼛거린다. 그녀의 가방(의식)은 까까머리 사내녀석들 또는 단발머리 계집아이들의 시기와 질투의 칼과 침에 여지없이 훼손당한다. 그러나 정희는 늘 도도하고 당당했다. 도도하고 당당함! 그게 없으면 쓰러질 정도로 그녀의 시적 궤적과 삶의 연륜은 ‘나는 남과 다르다’는 자존심으로 직조되어 있었다. 왜 안 그렇겠는가. 정희 어머니는 당신 딸을 특별나게 키웠다. ‘내 이름 정희는 어머니가 당시 우리나라 첫 여성 비행조종사의 이름에서 따온 거래요. 비행 중에 추락해 죽었지만, 당시에 아주 존경받는 여조종사였지요.’ 이제사 알겠구나. 그녀의 유별난 자존심이 어디서 연유하는지를. 이 자존심 뒤에는 세상에서 가장 막강한 어머니의 사랑이 어릴 때부터 자리한 것이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뭇 잡놈들의 시선을 받으며

바람에게 시집와서 살다가//

부시시 입덧이 나서

쑥뿌리만 뽑아 올리는데//

새는 울어쌓고

얼굴은 부었어도//

산 찢어진 구멍마다

아기 나오는 소리//

꽃 속에 서로 들어가려고

잡놈들 쌈하는 소리

─ <춘궁> 전문

 

느지막하게 등단하고 대학을 졸업한 문정희는 여성지 기자로 취직한다. 거기서 강은교를 만난다. 둘은 함께 쏘다녔다. 속과 겉들이 팽팽했다. 그러던 중, 한 남자가 늘 사무실 부근에서 서성대며 정희를 기다리곤 한다. 때마침 그녀의 얼굴에는 봄 날 진달래처럼 여드름이 만발했고, 느낀 바 있어 서둘러 결혼하곤 남자의 하숙방에 신혼살림을 차린다. 부모의 경악이란!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문학적인 사건을 꼽으라면 그건 결혼’이라는 그녀의 말은 단순한 수사적 비유가 아니다. 문학소녀인 그녀를 어찌 해보려는 뭇 잡놈들의 탐심 가득한 눈총을 뿌리치고 바람 같은 사내와 결혼했지만, 속 삶은 혀 안에 스르르 녹는 솜사탕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꾸밈없이 답한다, 잦은 부부싸움의 연속이었다고.

그런 연유에선지 그녀의 초기 시는 싸움이나 젊음이 뜨겁게 달아오른 용광로(육체)를 제재로 한 작품이 적지 않다. 그녀는 그만큼 솔직하고 당당하다. ‘허허벌판에 누워서/깨끗한 남자를 기다린다.//불꽃이 울면서 짐승같이/젖무덤 밑으로 기어든다.//나무들은 간지러워/푸른 소리를 지르고//드디어 그 남자가/길을 무찔러 오는 소리’(<떠오르는 방>). 지금에야 이런 종류의 시가 문제될 것이 없지만, 지금부터 25년 전, 정희는 주위의 시선을 아랑곳 않고 당당하게 뜨거운 육체의 비밀을 배앝는다. 검정빛 니트에 가려진 그녀의 알몸은 모든 남성들을 소진시킬 만큼 안에서(!) 뜨겁게 후꾼 달고.

 

지금까지는 무효다.

이 침묵도 무효다.//

강요 당한 침묵의 밧줄

아, 아, 세상에//

봄조차도

침묵으로 말하고 있다.//

내가 없다.

그러나, 내가 살고 있다.//

무효다.

이 봄은 무효다.

─ <선언> 전문

 

그리곤 결혼해서 아이까지 낳은 아줌마가 얌전히 살림하지는 않고, 유신 독재 체제에 비겁하게 침묵하는 지식인들을 꾸짖는다. 무엇이 정희를 이처럼 당당하게 만드는가. 물론 그녀가 줁80년대의 권인숙 같은 강렬한 투사일 수는 없다. 다만 그녀의 성고문 사건을 계기로 자궁 파열로 죽은 유관순을 주제로 한 장시집 《아우내의 새》를 출간한다. 헤르메스 아마존, 샤넬 향수 옅은 <19번>을 즐겨 사용하는 문정희에게 ‘똥가방’의 송진내 비슷한 이국적 향취가 솔솔 풍겨나는 점이 오히려 수상하다. 그녀는 ‘70년대 초중반의 삼엄한 사회 정치적 상황 속에서 ‘이 침묵은 무효’라고 선언한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유효인가. 진실로 당시 어느 구석에 유효가 있단 말인가. ‘침묵을 강요하는 시대에서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시인의 자괴감과 부도덕한 정치 현실에 대한 분노’를 ‘강렬한 어조로 토로’한 그녀를 ‘당시의 험렬했던 정치 사회적 상황을 고려할 때 이처럼 직접적인 현실 비판의 목소리를 낸 시인의 숫자가 과연 얼마나 되었을까 의심스러우며, 그럼에도 문정희의 비판적 성향의 시가 거의 알려지지 않은 게 기이하게 여겨질 정도’라고 지적한 장영우(<바람과 불, 그리고 사랑>, 《현대시》 줁96. 3월호, 194쪽)의 글에 우리는 수긍치 않을 수 없다. 또 김정란이 제11회 소월시문학상 수상 작품론(《문학사상》, 줁96. 7월호)에서 문정희의 ‘사회의식’(또는 민중의식)에 대해 자신이 새삼스레 눈뜬 점을 시사하는 자기 독백도 의미롭게 보인다. 연이어 말했지. ‘그래도 나는 초기의 문정희가 그립다. 그 칼칼한 시적 역량을 깊이 아주 영혼 깊이 끌어내릴 순 없을까?’ ‘세계를 사랑하기 위해선 꼭 파계해야만 하는 것일까?’(99쪽) 그렇다. 문정희와 김정란을 포함, 우리 모두의 고민이라는 비탄의 맹렬한 ‘저주’를 향해 시인들은 김수영처럼 침을 뱉는다. 쓴다, 쓸 것이다, 써야 한다.

 

문학적 연보

문정희 연보는 화려하다. 그것이 문인 행보에 있어 오히려 오랫동안 불편했다. 1947년 전남 보성에서 출생한 정희는 노동초등교 명봉분교를 다니다가 교육열이 강한 부친에 의해 광주 서석국민학교로 전학한다. 1960년 전남여중을 다닌 뒤, 1963년 진명여고에 입학, 이대를 비롯한 성대·동대·경희대 등지의 백일장에서 시·소설·희곡 등의 장르로 30회 가까이 장원·입선. 여고 3년 때 백일장 입상작들을 모아 서정주 시인의 서문과 함께 시집 《꽃숨》을 발간하는 기록을 세운다. 꽃숨이란 꽃 피기 바로 직전 터질 듯한 몽오리. 미당과의 기막힌 만남은 여고 졸업 직후였다. 소녀의 유명세에 각 대학이 손을 뻗치고, 이윽고 미당으로부터도 유혹(?) 받는 남부러운 영예를 누린다. 1966년이었다. ‘문정희 양에게’라는 호칭으로 시작된, 시간이 누렇게 젖은 사신 일부를 엿보자.

 

오늘 우리 학교 교무처장한테서 전화가 왔는데, 문양더러 빨리 교무처장실로 나오라는 것입니다. 내일 오전 열시 오십분부터 열한시 사이거나, 열한시 오십분부터 열두시 사이에 동대 교수실로 나를 찾아오면 同行하겠읍니다. 만일 이 시간에 나를 못 찾게 되면 내일 중으로 교무처장 선생님 방으로 찾아가면 입학 이얘기가 있을 것입니다.

3월 31일 徐  廷  柱  

동대 문학 콩쿠르 ‘장원’이 계기였지만, 정희는 이미 서울의 유명한 문사로 정평나 있었다. 드디어 미당의 주선으로 동대 국문과에 특기생으로 입학하다. 허나 내외의 이런 상찬이 나중에는 오히려 그녀를 오만하게 만든다. 이때 만난 이들이 박제천·홍신선, 그리고 이젠 고인인 정의홍·송유하 시인들. 그러나 대체로 지적 자극을 받지는 못한 듯. 행복한 대학 생활은 아니었으나 그녀의 성격 탓도 많았다. 전 학년 중 여대생이 30여명, 그녀는 여학생 대표 일을 맡는다. ‘숱한 백일장 수상의 찬란한 더께를 벗겨 버리자.’ 정희의 철늦은 자각이 일던 중, 묘하게도 고교 시절 우애를 나누던 윤후명·박정만이 신춘문예에 당선, 쇼크를 받는다.

1969년 대학 4학년 때 《월간문학》 신인상에 <불면> <하늘> 등이 당선, 등단한 뒤 줁73년 처음으로 《문정희시집》을 발간한다. 이때 착한 흙냄새나는 매력적인 남자를 만난다. 판탈롱을 입은 여기자 문정희의 현실적 삶은 이렇게 출발하고 미당의 주례로 올린 결혼식에 이어 명성여중고 야간에서 교직을 시작한다. 한 가지 잊지 못할 일은 바로 그 해에 신동엽 시인이 그 학교에서 근무하다 돌아가셨는데, 바로 그 분이 사용한 캐비넷을 물려받았다고 캐비넷 안은 시극 등의 원고지로 가득차 있었고 그녀에겐 황홀과 경이였다고 술회한다. 1975년 시집 《새떼》를 상재하고 문인극 <환상부부>(유현종 연출)에도 출연한다.

1976년 제21회 현대문학상 수상. 《젊은 고뇌와 사랑》을 발간하면서  줁80년엔 논문 <노천명 시연구>로 동대 대학원을 졸업하다. 몇 개국을 여행하다가 도미, 1982년 뉴욕대학교 대학원 종교교육학과에 입학한다. 1984년 영국·이태리·벨지움·오스트리아·룩셈부르크·프랑스·스위스 등을 여행한 뒤 귀국하여 시집 《혼자 무너지는 종소리》 발간. 다음 해에 뉴욕 이미지를 담은 시집 《찔레》를 펴내고 줁86년 《아우내의 새》를 출간한다, 1987년 시선집 《그리운 나의 섬》 《우리는 왜 흐르는가》와 시해설집 《역대여류시가시집》도 계속해서 내고 숨가쁘게 대만 여행. 1988년 시집 《하늘보다 먼 곳에 매인 그네》를, 1989년에는 시선집 《꿈꾸는 눈썹》을 상재한다. 그리고 1990년 MBC-TV와 함께 인종 분쟁 지역인 스리랑카를 취재하는 활동을 벌인 뒤 연시집 《제 몸속에 살고있는 새를 꺼내 주세요》를 출간.

1991년 시선집-한국대표시인 100인선 《어린 사랑에게》에 이어 이듬해는 산문집 《당당한 여자》를 발간, 페미니즘 수필집으로서 뜨거운 호응을 받는다. 잠시 러시아 여행. 1993년에 《별이 뜨면 슬픔도 향기롭다》를 낸 뒤, ‘<서정주시 연구>―물의 심상과 상징체계를 중심으로’로 서울여대에서 박사학위 취득. 국립극장의 의뢰로 대전 엑스포의 <구운몽>(김소희 작창, 안숙선 소리)을 발표하고 ‘서울 정도 600년 기념 세계의 도시 시리즈;실크 로드의 종착지 터어키’를 SBS-TV와 함께, 바쁘게 취재한다. 곧이어 산문집 《날개를 자르고 날아가라 한다》를 내고 줁94년 카리브해·멕시코·자메이카를 취재 여행(SBS-TV)하다. 이때 시집 《구운몽》 발간.

1995년에 남부유럽 여행을 마친 뒤 생에 큰 전환점이 된, 아이오와 대학의 <국제 창작프로그램(IWP)>에 참가한다. 3개월간 그녀가 8층 기숙사에서 익힌 국제 감각도 무시할 수 없었고, 그것은 잊을 수 없는 충격이었다. 그녀가 그곳에서 ‘자유와 고독을 견고히 지켜내려는 자세’를 배웠다면 적절할까. 일종의 확실한 인생 바꾸기로, 여러 시인들과 만나면서 ‘글쟁이가 매우 근사하다’는 인식을 하게 된다. 그 곳은 게이의 천국, 제2의 놀라움이었다. 1996년 시집 《남자를 위하여》로 제11회 소월시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일단 그녀는 자신의 문학적 연대기에 굵은 획을 긋는다. 정말 숨가쁜 삶의 연속이었다. 여기서 그녀의 자전(<결국 내가 순교할 곳은 원고지>, 《문학사상》, 줁96. 7월호)을 함께 감상해보자.

 

눈오는 날, 그의 첫 월급 만팔천원 가운데 4천원을 주고 우크렐라라는 네 줄짜리 악기를 사서 <부베의 연인>이니 <맨발의 청춘> 등 당시 유행하는 노래들을 키며 밤마다 시를 썼다. 그리고 두어 달 후 나는 한 여자중학교에 취직이 되어 세상 속으로 환원되었다. 일 년쯤 뒤였던가, 내 소녀 시절의 문학적 재능과 오만한 처녀 시절을 기억하는 한 선배가 원고 청탁을 했을 때 나는 그 앞에 만삭의 여자가 되어 나타났다. 그의 눈가에 일어나던 경련을 나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래도 나는 열심히 글을 쓴 셈이다. 단칸방이었기에 혹시 자다가 불을 켜면 다른 사람이 깰까봐 기역자로 된 군용 카키색 후레쉬 하나 사다 놓고 그 불빛 아래서 뭔가를 끝없이 끄적이곤 했다. 낮에는 직장에서 시달렸지만 후레쉬 불빛 아래 배를 깔고 누우면 집중이 되고 행복했다.(…중략…)《나비의 탄생》을 쓰면서 많은 설화들을 읽었다. 이 시극은 《현대문학》에 발표되었고 동시에 지금은 없어진 명동 예술 극장무대에 올려지게 되었다. 중국의 연리수기(煙里樹記)에 나오는 얘기로서 한국·중국·일본에 공통으로 퍼져 있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유독 그것이 우리나라에 와서, 여인의 흰옷자락이 나비가 되었다는 꼬리가 붙은 대목이었다. 나는 바로 이것을 시극으로 형상화시켰다. 야간학교 흐릿한 불빛 아래 깨알처럼 시를 쓰고 그것을 <댓닢詞>라는 제목으로 함께 묶어 시극집 《새떼》를 펴냈다.

 

한편 문인극에 출연하여 카페 테아트르 무대에 배우가 되어 서보기도 했지만, 시대는 암울하고 삶은 고달펐다. 두 아이를 두고 야간 학교 교사생활을 하는 힘들고 산문적인 시기였다. 더구나 《새떼》에 수록된 3편의 시가 검열에 걸려 삭제 딱지가 붙어 반송된 적도 있었다. 나는 유신 이후 제한된 표현에 대한 답답한 부자유한 사회 현실에 깊은 회의를 갖기 시작했다. 신념을 입으로 부르짖고 죽어간 소녀 관순의 자유혼과 열정을 쓰기로 작정하고 아우내 장터 일대를 답사 했다. 그리고 특별한 문학세계의 변모없이 습관적으로 시를 쓰고 그것이 적당량 모이면 시집을 내는 것에 속으로 반발했다. 그래서 그후 약 8년 동안 시집을 내지 않았다.(…중략…)시대는 드디어 80년대 오월 광주로 이어졌다. 암울한 잿빛과 위기의식 속에 오래 벼르던 먼 여행길에 올랐다. 외교관이었던 오빠의 도움이 있었지만 한 잡지사와의 계약으로 난생 처음 외국땅을 밟은 것이었다.(…중략…)여행중 내내 나를 따라 다니는 ‘군인들이 학생들을 쏴죽이는 나라’에서 온 작가로서의 슬픔에 몸을 가눌 수가 없었다. 굶주린 거지들의 무소유와 시간과 숫자에 대한 무개념을 체험했다. 정치와 종교 그리고 무한한 시간들이 쌓여서 만든 충격적인 색깔과 성속(性俗)들과 영원성의 문제에 찬란히 눈물을 흘렸다. ‘오랫동안 나는 잘못 살았구나.’ ‘내 나라와 두고온 모국어에 대해 진실로 깊은 의미와 사랑을 절감’하고 ‘그리니지 빌리지와 소호를 중심으로 비로소 세계 예술의 본고장에서만 맛볼 수 있는 빛나는 천재 예술과 문화와 실험을 보면서 조금씩 눈떠가고 그 바람에 빨려들어 갔’던 그녀는 ‘소호의 급진적 실험과 기트로폴리탄 뮤지엄의 장엄한 전통에 넋을 잃’는다. ‘예술은 그 어느 것이건 세계적인 것이 아니면, 단 하나의 유일한 자기 우주가 아니면 나머지는 말짱 헛것이라는 것도 톡톡히 목격했다. 오직 새로운 것, 처녀림을 가진 것만이 살아 남’는다는 깨달음 속에 결코 ‘반목과 답습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 예술의 준엄성’임을 스스로의 가슴에 확실히 못질해버린다.

이때부터였을까. 그녀는 ‘도발적’으로 변한다. 늙은 총각시인 전원책이 작품에서 여자를 ‘들판적’으로 누이고 어쩌고 하면서 여자를 해꼬지(?)하는 스토리가 나오지만, 문정희 역시 남자를 맨 몸으로 누워 기다리는 작품 속 폭력성도 서슴치 않는다. 그런데 그녀는 섹시하지 않다. 문정희는 칼날 같은 눈빛에 비해 도툼한 코가 인심 후한 양으로 오히려 촌스럽다. 코는 그녀의 전매 특허이자 컴플렉스. 그녀는 코로부터 서서히 노출된다. 여기서 나는 그녀가 관음증이든 노출증이든 스스로 코를 처치하지 않고는 비밀스런 작업을 시도하지 못할 거라고 강변한다. 그래, 눈썹도 모양이 후덕해. 비록 그녀가 심각한 표정을 지을 때 입이 한일자로 닫히고 눈엔 서늘한 광선이 깃들지만 그녀의 내벽은 타인을 속일 수 없이 연하고 약하다. 이러한 파격은 본디 완전한 조형성을 은근히 추구하는 법.

빌어먹을.

나는 이렇게 회의한다, 안으로 안으로. 야수·맹수성이 그녀의 안에 들었다고? ‘아름다운 맹수를 꿈’꾼다고? 천만에. 그녀는 부드럽다. 섬세하다. 다변·열변가지만, 아름답고 부드러운 맹수를 꿈꾸는 중이라야 맞다. 그녀는 고독이란 잔 가지가 니트 깃에서 드러나고 자유가 그 끝에서 빨래처럼 펄렁인다. 잉잉댄다. 검은색이 그녀의 내면을 감춘다. 하는 수 없이 자기를 사뭇 위장한다. 그녀는 그러므로 표범이다. 맹독성을 안에 지닌, 치사량 제로의 몽환 감각 시계의 시침이 휘고 초침이 데꺽거리고 분침이 거꾸로 물결친다. 검투사 같은 오, 그녀의 몸이 내게 넘실거린다! 숨, 막혀. 윤후명이 말한 시에서의 ‘처녀의 생간’은 어쩌면 그녀의 ‘정신의 생간’일지도 모른다. 은으로 만든 장신구가 쩔렁대는 그녀는 마치 제례祭禮를 치르는 집사장執事長 같다. 머플러는 매혹스런 갈기, 설혹 그게 갈매색이거나 갈색류의 다색茶色이라 해도.

자서전도 쓴 디자이너 쏘냐 리키엘의 니트 작품에 매료당하고 나서부터 문정희는 출렁이는 니트를 택했다. 그녀는 이렇게 집약될 수 있다. 銀장신구 검정색 머플러 니트옷 여행, 그리고 샤넬 향수 19번…. 그러니까 수상쩍은 글래머 그녀의 몸매에 맞게 1)번부터 4)번까지는 한 마디로 늘어져 ‘치렁치렁’ 소릴 내는 것들 뿐이다. 정희는 시시때때로 여행길에 오른다. ‘내 나라와 나 자신을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된 것도 진실로 귀한 체험이었다. 페미니즘에 대한 이론적인 체계에 접한 것도 그때의 뉴욕’이라면서. (그녀는 굳이 제목을 밝히지 않는, 뉴욕 체험의 소설도 쓴 바 있다.) 그렇다고 해도 나는 그녀의 시가 페미니즘을 지향한다는 김욱동의 좋은 시각에 조심스런 양념을 더하고 싶다. 즉, 문정희 시가 ‘새롭게 굼틀대는 구원한 생명성을 지향’한다고 보고 그녀의 에로스 취향이 차라리 <그로테스크 페미니즘>(?)의 한 가지枝가 될 순 없을까, 라는 의문을 제기한다. 나 또한 ‘여성에게 있어 남자라는 문제를 해결하자’는 슬로건이 그녀의 페미니즘의 단초라고 생각하고 있다. 사랑 이전의 객관적 의미의 남자, 남성 성性의 본질을 모색하는 문정희. ‘남과 여’의 화해·공존·대등·반쪽 남자/반쪽 여자의 진정한 위치를 궁극적으로 읽기…, 이것이 문정희 시의 주된 모티프인 것이다. 쉽게 말해 그녀는 지금 초기 시와 달리 여성만의 상위개념에 젖어있지 않다. 행여 여성 지배 이데올로기를 그리자는 데 뜻을 두지도 않았음이 분명하다. 그녀는 간단치 않게 좌충左衝하고 우돌右突한다. 이즘은 내용일 것이며, 형식이란 껍질 다루기 식에서 탈피하려는 몸부림이 그녀만의 ‘게임의 법칙’이다. 본질 속에 핵이 있다. 여기서 말하는 핵은 영과 육의 ‘순결’일 따름. 자전을 다시 넘겨보자. 시극으로 분주하던 이야기다.

 

뉴욕으로 떠나기 전에 역시 《현대문학》에 발표했던 시극 <도미>가 극단 가교에 의해 공연되었고 이어서 동숭동 문예극장 소극장에서 앵콜 공연되기도 했다. <도미>는 삼국유사 제 48종(綜)에 나오는 도미를 소재로 쓴 시극이었다. 백제의 이름난 목수 도미를 예술가의 상징으로 설정하고 개루왕이 그의 눈을 뽑는 것을 캄캄한 자유의 박탈로 묘사했다. 절대 권력 아래서 실명한 예술가 도미와 개루왕에게 아부하는 전형적인 인간인 시녀에게 메피스토처럼 비중을 둠으로써 오늘날의 사회 부패와 부조리를 비판하며 진실이 무엇인지 보여주고자 했다.

 

연이은 두번의 대수술, 자궁암과 유방의 몽오리 제거 수술이 무서웠었다. 지금도 가슴 위 작은 흉터는 자신의 몸을 거울 앞에 서지 못하도록 만든다. 흉칙! 허나 ‘겸손’해지는 자기 앞에서 자신의 뼈대를 곧추세운다. 곧 시선집 《어린 사랑에게》를 간행하는 기쁨을 누리지만, 웬일인지 그녀의 정신은 최근 피폐해지고 건강도 좋지 않게 된다. ‘문학은 말이 재료인데 그 말 자체가 모두 때묻어 보였다. 이것을 갈무리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녀는 ‘좀더 자유로워져야겠다’고 생각한다. 어쩐지 그랬다, 그녀는 스스로 고백한다. 울컥, 소리가 들리는 듯. 지나치게 심각하고 완벽·거대성을 지향해 온 시절들에 대해, 온전한 아름다움만 추구했던 지나간 아픈 젊음들에 대하여.

 

《문학사상》 윤순례 기자는 소월시 문학상(줁96) 수상자 인터뷰를 정리하면서 그녀를 ‘신명과 광기’라는 표제로 단호히 명명한다. 한영옥은 시집 《남자를 위하여》를 위한 글에서 문정희가 ‘맹렬한 그리움’의 시인임을 분명히 밝힌다. 정영자의 ‘단호함과 관능성’이 눈에 띄고 김욱동도 가부장제에 도전하는 시적 화자를 언급하면서 ‘생태학적 페미니스트로서의 문정희’를 적절히 역설했다. 그런데 나는 정희의 ‘극렬한 순결 지향성’을 폭로, 청문회 한켠에 그녀를 초대하고 싶다. ‘순결성’을 이렇게 정리한다, 이중적 나선 구조를 가진 단어라고. 요건 진정 꼬이는 말이다. 어떤 형태로든 인간을 속수무책으로 환장하게 만든다. 빌어먹을 일부 남정네들이 집착하며 ‘순결’을 과감히 파괴시키려 들지만 그럴수록 정희는 자신만의 내밀한 주소록(디렉토리)에 근근이 칩거하려 든다. 그녀 시의 순결성은 통어統御와 감금監禁이라는 내연內延과 상실과 노출이란 외연外延을 갖는 것으로 보인다. 이 두 가지 정황을 내세운 가설을 통해, 시적 화자는 순결성 상실과 회복의 원초적 욕망 사이에서 꼼짝없이 망설인다. 그러다가 둘은 부딪친다. 완충을 생각하라, ‘완충’은 화해다. 어느새 불안감이, 불안감으로 그녀 시에 얼른 보이다 만다. 남자니 여자니 원초적인 물성物性을 추구하며 조심 조심히 사물로 다가가는 문정희는 단 일격에 온 생애의 두개골을 박살내고 싶은, 진정한 페미니즘의 시인이 되려는 것일까.

그녀는 또 남성성男性性을 만끽하려는 투정을 한다. 확, 잡채어 남자를 누인다, 잠시, 앙탈하는 남성의 성性을 금방 능욕해버린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으므로 남성의 눈에 눈물이 고인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녀에게 남성성을 빼앗긴 것이다. 남자를 멋지게 해치운, 고무로 엉성히 만든 성기는 그런데 가짜일 수밖에 없다. 위증이다. 병신이다. 다시는 말을 더 듣지 않는다. <위증 국회>에 <위증 공화국>이 탄생되기까지 우리는 서로 결탁했고 방조했던 점을 기피하지 못한다. 그래도 어처구니없이 제2의 성性을 그리는 문정희가 되어 때로 <키 큰 남자를 보면>(전문) 만나고 싶다. ‘은사시나무에 올라가서/그의 눈썹을 만져 보고 싶다/아름다운 벌레처럼 꿈틀거리는/그의 눈썹’을 계속 만나고 싶어한다.

 

키 큰 남자를 보면

가만히 팔 걷고 싶다

어린 날 오빠 팔에 매달리듯

그렇게 매달리고 싶다

나팔꽃이 되어도 좋을까

아니, 바람에 나부끼는

은사시나무에 올라가서

그의 눈썹을 만져 보고 싶다

아름다운 벌레처럼 꿈틀거리는

그의 눈썹에

한 개의 잎으로 매달려

푸른 하늘을 조금씩 갉아먹고 싶다

누에처럼 긴 잠 들고 싶다

키 큰 남자를 보면

 

정희의 시를 보면 요즘 들어 유난히 ‘아름다움’이 많이 등장한다. 대개가 직설이 아닌 역설이거나 반어反語다. 맹독성 신데렐라 컴플렉스? 그런데 이 ‘아름다움’에는 필연적인 이유가 있다. 시인은 찾는다. 탐지하고 캐고 두들긴다. 앞에서 제시한 <아름다운 곳>은 기어이 가서 쓰다듬어 줘야 아름다움들이 캐어진다는 고백이 보인다.

모든 암놈들은 냄새를 낸다. 정신없이. 남정네들이 그리울수록 암내를 많이 낸다. 숫놈들은 안 그럴까. 환장하는 5월의 라일락 향이 그렇다, 요즘 나는 미치겠다. 교정을 파고드는, 내 아랫도리부터 가슴을 싸안아 휴지처럼 구겨놓고 다시 나의 가슴을 내팽겨치고 내닫는 라일락 향이 그렇다. 우리는 암내건 숫내건 냄새를 풍기며 다닌다. 나도 이 계절에 환장하는 화냥년이나 될까. 향과 교접하는, 그러다가 끝끝내 감춘 신음을 토하는, 그러다가 가슴이 터져도 난 몰라, 하는…. 오, 실로 독한 내음이여. 할 수 없이 나는 외친다.

오매, 환장하것네!

난 이 ‘환장’이란 말에 매혹 당한 지 이미 오래다. 이 단어는 서운케도 한자어로 ‘換腸’, 환심장換心腸의 준말이다. 기존 사고 의식과 달리 마음이 아주 바뀜을 뜻하는데 우리네 정서에 딱 맞는 표현이 쉽지 않다. (무얼까, 독자들께서 유효적절한 <풀이>를 보내주셨으면.) 누가 뭐래도, 그래도 우린 환장할 때가 있다, 환장해서 가슴 속이 뒤집힐 때가 있다. 잘은 몰라도 문 시인은 1년에도 두어 번씩 바다 바깥으로 바람 피러, ‘환장하러’ 다닌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인터뷰를 마치고 북아메리카로 훌쩍 떠났다. 내가 죽을똥 싸며 20여권의 책을 읽어대고 밑금 치고 자판을 두들기는 동안, 그녀는 뉴욕이나 내 생각이 닿지 않는 어디쯤의 뒷골목을 절렁이며 다닐 걸. 마음을 열고, 몸을 팍 열고. 시차 정도는 마음대로 조정하니까 어깨도 으쓱대며. 왜냐하면 그녀는 거기서도 결코 위축되지 않으니까. 백색인과 흑인들 사이에서, 그들을 밀치며 조선의 <당당한 여자>가 되어.

5월은 그녀의 계절이다. 끼 있는 여자 정희는 신록이 물드는 이때부터 무언가를 염탐廉探한다. 그 염탐은 바로 ‘남탐男貪(?)’으로 <사랑하는 사마천 당신에게>에서 ‘천년 후의 여자 하나/오래 잠 못 들게 하는/멋진 사나이가 여기 있다’며 새삼스레 밝히더니 <이빨>에선 ‘허허벌판에 누워/깨끗한 남자를 기다’리는 망측함(!)을 보인다. 숨이 막,힌,다. 역시 문정희다. 상상하자. 그렇다고 그녀가 이제부터 옷을 벗는다고? 결코 아니다. 변모란 외적인 것, 내적 변화가 결코 아니다. 탈태脫胎는 하고 있지만 그녀의 염결성은 시적 처녀성(순결)을 꼭 비장한다. 그녀의 자존심에 직접 물어보라.

나도 정희도 마찬가지. 너나 할 것 없이 마찬가지. 그런데 문자는 표정만 생소하고 시인들은 오로지 지성이란 펀치로 감성을 흠씬 두드리며 쏘다닌다. 펑펑, 눈물을 쏟자. 시인이여. 우리도 정희의 ‘파꽃’을 찾아 명교리를 배회하자꾸나. ‘조금만 스치어도/슬픔처럼 코끝을 건드리는 파꽃’ 내음 따라. 참말 그리움이 울컥 솟는 아름다운 시다.

 

흰 파꽃이 피는 여름이 되면

바닷가 명교리에 가보리라

조금만 스치어도

슬픔처럼 코끝을 건드리는

파꽃냄새를 따라가면

이 세상 끝에 닿는다는 명교리에 가서

내 이름 부르는 바다를 만나리라

어린시절 오줌을 싸서

소금 받으러 가다 넘어진 바위

내 수치와 슬픔 위에

은빛 소금을 뿌리던 외가 식구들

이제는 모두 돌아가고 없지만

서걱이는 모래톱 속에 손을 넣으면

차가운 눈물샘은 여전히 솟으리니

조금만 스치어도

슬픔처럼 코끝을 건드리는

파꽃냄새를 따라가서

그리운 키를 쓰고 소금을 받으리라

 

넘실대는 여름바다에

푸른 추억의 날개를 달아주리라

─ <파꽃길> 전문

 

문정희는 두 개의 걸음을 갖고 있다. 하나는 오리처럼 뒤뚱뒤뚱, 하나는 쉬임없는 직진이다. 문제는 전자다. 그녀는 왜 그렇게 걸을까. 살이 좀 붙어 있어서? 줁50년대의 이카로스는 박인환이었다. 줁60년대는 김수영이었다. 줁70년대는…, 김남주 시인 아니면 전태일이 차라리 낫다. 민중권 모두라고 할 수 있다. 뼈 깎는 노동을 한 자들은 모두 비상조차 못하는 절망의 사슬에 묶여 생지옥을 보낸다. 나는 철저히 못난 국외자局外者에 불과했지만. 그녀가 비상의 몸짓으로 걸음마할 때가 유쾌하다. 이른바 민중을 위한 참여의 시들을 심심치 않게 쓴 문정희. 그녀가 비상하려는 유난한 몸짓을 할 때가 두렵다. 그녀가 과연 떠오를까, 둥둥? 아무래도 나의 상상력으론 절대 한계에 부딪친다. 그럴 리 없어. 다른 이는 다 두둥실 떠올라도 정희만큼은, ―미안해라. 문정희를 인사동에서 보내면서 뒤를 쳐다본다. 아슬아슬, 오늘은 균형잡힌 걸음이나 약간 ‘뒤뚱뒤뚱’이다. 그러니 아무리 그녀가,내 허리를 휘감아 줄사내는 없는가 ─ (<폭풍우> 부분)

 

라고 만인의 남성에게 하소연해봤자 소용없는 일이다. 도대체 ‘휘감아 줄’ 허리 싸이즈를 모르니 어쩌랴! 정희 씨, 어디 한번이라도 남정네에게 안겨봤는지 묻고 싶다. 두번째 쯤이라야 황홀한 폼으로 안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비비안 리처럼 허리를 젖힌다면 몰라도. 그녀는 남의 손끝 하나 스치는 것조차 거부하는 방어 자세를 취한다. 총총걸음으로 사라지는 정희의 자취를 커트하면서 돌아선다. 별안간 식탐이 일어난다. 부근 수퍼에서 과자를 하나 사먹는다. 무심히 동전을 내준 기억, 싸다는 생각이 들어 가만히 들여다 보니 쵸코파이다. 싸지, 어둠의 둥근 파이, 파이(어둠) 중앙을 굶주린 하이에나의 이빨로 콰곽, 문다. 오늘은 왜 이다지도 허기지는 걸까. 어둠 속 저변으로부터 달려오는 지하철 굉음이 아련해라.

 

추위가 칼날처럼 다가든 새벽

무심히 커튼을 젖히다 보면

유리창에 피어난, 아니 이런 황홀한 꿈을 보았나.

세상과 나 사이에 밤새 누가

이런 투명한 꽃을 피워 놓으셨을까.

들녘의 꽃들조차 제 빛깔을 감추고

씨앗 속에 깊이 숨 죽이고 있을 때

이내 스러지는 니르바나의 꽃을

저 얇고 날카로운 유리창에 누가 새겨 놓았을까.

하긴 사람도 그렇지.

가장 가혹한 고통의 밤이 끝난 자리에

가장 눈부시고 부드러운 꿈이 일어서지.

새하얀 신부 앞에 붉고 푸른 색깔들 입 다물듯이

들녘의 꽃들 모두 제 향기를

씨앗 속에 깊이 감추고 있을 때

어둠이 스며드는 차가운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누가 저토록 슬픈 향기를 새기셨을까.

한 방울 물로 스러지는

불가해한 비애의 꽃송이들을

─ <성에꽃> 전문

 

‘불가해한 비애의 꽃송이들’은 성에다. 시인은 한밤동안 ‘황홀한 꿈’과 ‘니르바나의 꽃’으로 있던 완전한 투명―성에꽃을 발견하곤 ‘가장 가혹한 고통의 밤이 끝난 자리에/가장 눈부시고 부드러운 꿈이 일어’나는 걸 발견한다. 모든 사물들은, 비록 그것이 들풀이라 하더라도 ‘제 향기를/씨앗 속에 깊이 감추’었다고 노래한다. 이건 문 시인의 독특한 각성이자 유다른 변모다. 문정희는 완전히 구습의 의상을 벗으며 킁킁, 청람晴嵐한 해풍을 맡는다. ‘날개를 자르고 날아가라’고 자신을 향해 호되게 명령한다. 그러므로 여행병이 역마살처럼 도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

 

쓰기·읽기·생각하기

문정희 시인은 외친다. 문학을 철학적 측면보다 과학하는 마음의 인식으로부터 공부하자, 죽기 아니면 까물어치기로 사물 캐기와 외국어를 하자, 좀스런 시의 마음에서 벗어나 호방한(득음得音할 수 있는) 시를 쓰자….

독서에 대해 그녀는 수필집 《날개를 자르고 날아가라 한다》(129쪽)에서 말한다. 영원한 유아였다던 문정희, 어머니가 옛날부터 일컫던, ‘너는 천재’라는 말로 인한 크나큰 오만에서 평정심을 찾은 것은 ‘독서와 사색’이었다. 그녀는 이렇게 내 귀를 자극한다, ‘마음 속에 절寺간 하나를 만들어 잃어버린 고요를 되찾아오고 놓쳐버린 사색의 장을 열어야’ 한다고. 강태도 덩달아 말한다. 무조건 깊, 깊이 읽자! (핑계들이 그렇게 많을꼬.) 비록 푼수쟁이의 요설로, 환상을 섞어서 쓰는 <커버 스토리>지만, 나도 덩달아 엄숙히 <독서>를 외친다. 쓰러지라고 쓰러지라고, 총 한방을 문정희에게 겨냥해 땡기지만 ‘아름다운 무법자’인 정희는 지독히도 쓰러지지 않는다. 그녀는 ‘정신의 무법자’답게 말한다, 소비자인 현대인은 쓰레기 생산자로 예를 들어 ‘똥’은 현대인의 상징적 배설물이 아닌가, 하고. 그녀의 자부심과 기쁨은 시적 공간이 출생지 전남 보성에서 뉴욕을 비롯한 전 세계로 넓혀있다는 데 있다. 요즘 ‘필사적으로 글을 쓴다’는 그녀의 대단한 완고完固가 내 가슴을 적신다.

그녀는 조용히 책을 읽고 있다. 《禪의 眞髓》 《화엄의 사상》 《문학과 종교》 《스페인 문학사》가 그것이다. 그런데 정희 씨, 이건 어때요? 파마를 풀고 단정히 머릴 묶으면 한결 예쁠 텐데….(1997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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