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 박재삼

   

 

 

박재삼, 그 서러운 아름다움

 

 

죽음은 과일 속의 씨앗처럼 존재하는 것 -라이너 마리아 릴케

작가들의 사슬이여, 무궁무진하여 끝이 없으라 -제임스 미치너

 

 

김강태

 

 

 

그는 朴在森이 아니었다

‘그, 그만 해…. 가…, 어서어.’

그가 말했다. 그건 차라리 절규였다.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가만히 그를 응시한다. 사실이 그랬다. 그는 아무 존재도 아니었다. 사진으로 나타난, 늘 불콰한 낯빛의 텁텁한 시골 사람이 아니었다. 사람의 얼굴이 전혀 아니었다. 그때 기자가 나를 보며 눈으로 말한다.

사진, 찍을 수 없어요.

그 눈빛이 하는 말의 의미를 나는 금세 알아챈다. <커버 스토리> 사진으로 올릴 수 없는 금기禁忌의 얼굴─. 그렇군, 나는 나의 소형 카메라를 가슴에 찔러 넣는다. 차를 날라온 부인이 기자의 카메라 렌즈에 촉각을 세우는 듯했다. 희미한 말, 흩어진 말조각이 그의 마지막 음성이라 생각하고, 사뭇 떨리는 마음으로 몇 마디를 조심스레 담는다. 인간 박재삼은 더 이상 시인도 원로도 아닌, 진정 초췌憔悴한 모습이었다. ‘초췌’라는 낱말을 참 온몸으로 실감한 순간이었다. 내 느낌에도 그는 온몸이 파리한 병주머니였다. 퍼뜩, ‘최민식 사진 산문집’을 떠올린다. 오로지 가난하고 서글픈 장면만 모은 책 《종이거울 속의 슬픈 얼굴》(한양출판, 1996) 148쪽에는 정말 슬픈 남자의 찌든 얼굴이 나온다. 그런데 노동에 지친 빈곤의 표정이 리얼리티를 머금은 채 이상한 힘을 발산하는 것이다. 거칠지만 모호한 미지未知를 향한 저 눈빛, 그건 무엇일까. 대체 그 눈빛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송구스럽지만 나는 오늘이 왠지 박재삼 시인과의, 이승에서의 마지막 인터뷰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는 이제 그만 살아야 해─, 부인에겐 죄송하지만. 기자가 말없이, 조심히 녹음기의 키를 누른다. 누르는 손끝이 파르르 떨려오는 게 보였다. 갑작스런, 작은 빨간 불빛. 빠알갛게 켜지는 저 불빛. 그리고 하나의 파란 불빛 한 점. 아아, 파란 줄기는 내게 박 시인의 생명선 같았다. 이 불빛이 끊어지면 안 돼. 어디선가 보았던…, 그렇다.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江을 보것네’란 시구였지. 별안간 불빛이 깜빡거리기 시작했다. 긴장한다. 불안해진다. 깜빡, 깜빡. 감감, 깜박…. 느릿느릿, 소형 테이프가 돌아간다. 그의 가쁜 숨소리는, 마치 산소호흡기의 수상한 그래프가 타는 생명을 연장하는 것처럼 들린다. 그의 생명이 삭아가는 중이다. 그는, 물 위를 한 조각으로 표표히 떠도는 나뭇잎이었다. 가을강을 채우다 만, 그래서 홀로이 떨어져 나간 한 조각 나뭇잎이었다. 잎새가 점점 삭아간다, 잎새가.

아주 짧은 인터뷰에 정식으로 임하던 중, 5분도 채 안 되어 말을 더듬던 그는 쇳소리나는 음성으로 인터뷰를 한사코 마닸다. 그때 부인이 눈을 주었다. 나의 눈이 그녀의 조심스런 시선을 받는다. 아깐 정신이 드셨어요, 지금은 가물거려서 그러세요. 나는 끄덕인다. 처음 인사할 때는 그가 나를 알아보았는데.

‘…그만 해.’

 

시인 박재삼 얼굴이 아니었다

1997년 5월 16일 금요일 오후 3시 30분 경이었다. 이 분이 그토록이나 멋진 <울음이 타는 가을강>의 시인이란 말인가. 내 어릴 적, ‘울음이 타는 가을강’이란 뜨거운 서정抒情 시구로 마음을 늘 젖게 만들었던 바로 그 박재삼 선생인가, 그가 언제 시인이었던가, 그랬던가…. ‘해질녘 울음이 타는 강’에 그저 애달퍼하며 시심을 키우던 나의 20대. ‘서러움’이란 말의 빛깔을 맛보게 했던, 나를 눈물나게 만든 시인 박재삼 그 분이란 말인가. 이젠 박용래·김종삼 시인에 이어 그를 20세기 마지막 시인으로 기억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병원용인 듯 싶은 침대 위에 다소굿 누운 채 그는 짧게 깎은 머리, 초점이 흐린 눈빛으로 나를 응시한다. 몹시 피로하다고 했다. 힘든지 끙, 하는 소릴 낸다. 미안감으로 나는 가만히 외면한다. 이건 인터뷰가 아니라 고문이야, 힘이 빠졌다. 약간 고개 숙인 윤 기자가 그냥 망연히, 박 시인에게 안타까운 눈길을 주고 있었다. 기도하는 게 분명했다.

 

마음도 한 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햇볕으로나 동무삼아 따라가면,

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나고나.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강을 보것네.

 

저것 봐, 저것 봐,네보담도 내보담도

그 기쁜 첫사랑 산골 물소리가 사라지고

그 다음 사랑 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 와 가는

소리죽은 가을강을 처음 보것네.

─ <울음이 타는 가을江> 전문

 

나는 기억한다, 이 시가 20대 중반의 작품이라는 걸. 1959년 작으로, 신구문화사에서 펴낸 첫시집 《춘향이 마음》(1962)에 수록된 박 시인의 절창絶唱이다. 낱말의 마디마디에 이어지고 스며든 긴장미를 보자. 우리는 온전히 미치는 시적 화자를 다만 마음결로 느낄 일이다. 마음의 결과 결에 실핏줄이 들어있다면! 짙붉은 혈액을 어찌어찌 해보련만은. 여기 왈칵 터뜨리는 순한 울음이 뵈지 않는가. 그런데 그 울음이 서럽지 않고, 아프지 않고, 마냥 아름답지 않은가.

 

비로소 그는 박재삼이었다

돌아와 반듯이 앉은 나는 성냥불로 촛불을 당긴다. 완전 연소하는, 작고 예쁜 색색의 양초다. 촛불에 그가 그려진다. 동공이 촉촉히, 그리움이 원형으로 동그마니, 그러한 한 마리 파리한 새로…. 지난 장면이 나를 압도한다. 내가 부인께 간청하다시피 하여 겨우 박 시인의 욕창褥瘡 앓는 등과 다리를 훔쳐보았을 때.

악, 난 질끈 눈을 감았다. 오한이 일었다. 양쪽 다리가 죄다 시커멓게 썩은 것이다. 온몸의 털이 일고 눈물이 났다. 지리부도에 나타난, 태백산맥 줄기같은 썩은 욕창 부위가 다리 아래쪽으로 죽 뻗어 있었다. 썩은 것이 눌린 채였다. 만지려는 내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다시 경악한다. 혼미하다. 살은 없고 검은 부위가 썩어 속 깊이 패였다. 미이라. 전에 한번 소개한 콘라드 슈핀들러Konrad Spindler의 《오천년 전의 남자》(최몽룡 역, 청림출판, 1995)가 생각났다. 그 미이라의 발, 발가락이 이랬을까. 이젠 그의 어느 부위도 절단할 수가 없다. 희미한 피돌이는 그의 심장을 비롯하여 몸의 일부만을 할퀴고 지나다닌다. 흐름이 빨라지게 되면 그는 죽는다. 이미 왼쪽 발가락 5개와 오른쪽 새끼발가락 하나를 잘랐다. 나는 그의 발이 보고 싶어졌다. …그는 알까, 발가락 없는 자기 발을. 이제 그 무서운 욕창은 다리뼈 속 골수까지 파먹고 있다.

호흡이 더 거칠어진다. 깊은 숨이 끓는다. 좀더 냉정해지기로 하자, 하고 내 입을 앙 다물지만 소용이 없다. 이제 그는 죽을 일 하나만 남은 것이다….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죽음의) 바다에 다 와가는/소리 죽은 가을강’의 크나큰 울음이 들려오는 착각에 빠진다. 그가 정말 갈까. 가을에? 허망하게도 그는 여름 더위 전에 남은 우리들과 헤어질지 모른다. 발가락 없는 이 다리로, 대체 <황천반점>을 다니러 갈 순 있을까. 저승가는 데 천상병 시인처럼 노잣돈도 없이. 나중엔 구천에서 떠돌다가 삼천포 앞바다에서 영혼이 어물쩍대진 않을는지. 욕창이란 것이 참 이렇게 무서운 지 몰랐다. ‘창’이란 일종의 극심한 부스럼이다. 일단 물집이 생기면 위험하단다. 그 다음엔 궤양이 생기고, 독한 분비물이 흐르며 썩는다. 썩는다는 건 피의 돌기가 구석구석 미치지 못하는 것. 나는 열심히 산술을 해본다. 손·팔·다리 등을 제외하면 그의 몸 일부만 살아 있을 뿐.

나는 안타까움으로 부인을 열심히 설득했다. 정확한 기록이 남아야 해요, 박 시인의 생애를 정확히 남겨야 합니다…. 허지만 부인은 나의 모든 주문을 정중히, 단호히 거절한다. 곱고 격이 있는 동안童顔이었다. 더 이상 남편의 추한 모습을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다고. 그저 조용히, 흔적없이 가시게 놔두라는 긴절한 주문이다. 눈의 안에, 속에 염원이 서렸다. 얼마 전까지 남편은 <삼성 의료원>에서 지내다 왔다. 담당 의사는 최선을 다했다. 옆에서 보기에도 그랬다. 꺼져가는 생명의 푸른 점, 공간에 점점이 그어지는 희미한 생명곡선. 부단히도 끄트머릴 잡으려고 노력해준 의사 선생이 진정 고마울 따름이다. 물론, 얼마 전까지 범문단적으로 성원해준 은혜는 이루 어떻게 다 표현할 수 없다. 그러나. 그러나, 박재삼은 지금 숨이 꺼져간다. 안개처럼 소리없고 평이하다. 조용한 미이라. 어쩜 그는 가을에 우리 곁을 홀연히 떠날 것이다. 그 혼자서 유년의 기억을 더듬어 마지막 ‘소리 죽은 가을강’을 보러 가리라. 마침 바람이 새든 탓인지 켜논 촛불이 흔들리며 까물거린다. 내 방과 박 시인이 누운 방까지의 무한 거리. 생명의 점이 점점이 총총이, 안타까운 말없음표로 점멸한다….

 숨이 차서 너무 괴롭다. 그가 낮엔 자고 밤에 깨어있어 부인의 고생이 말이 아니다. 병명은 만성 신부전증. 고혈압에 동맥경화까지 겹쳤다. 세간에 나도는 당뇨병은 없다고 한다. 이젠 음식은 전혀 못하고 물도 한 모금 못하고, 매일 링거 주사만 맞고 있다. 박 시인의 병력을 물었다. 그는 35세에 고혈압으로 쓰러진다. 곧 언어 장애가 오고 오른쪽 마비가 오면서 반신불수가 된다. 다행히 일 년만에 다시 회복은 했지만 언어 표현이 힘들고 그때부터 기약없는 삶이 이어진다. 그러던 중, 증세가 악화해서 1995년 11월부터 복막 투석을 했다. 1달쯤 흐르자 그 후유증으로 동맥경화에 혈액 순환이 안 되고 12월부터는 일부가 썩기 시작했다. 이때 썩어 문드러지는 발가락을 어쩔 수 없이 절단한 것─. 한동안 괜찮다가 1996년 12월 어느날, 갑자기 구토하더니 음식을 들지 못하고 기력이 쇠잔해진다. 1997년 1월 9일, 장腸의 마비로 삼성의료원에 재입원했다가 3월 말에 퇴원하지만 그새 혼수상태로 4일만에 깨어나기도 한다. 사실 그때 부인은 이미 모든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4월 20일경 다시 ‘혼수昏睡’가 와서 입원하고 15일 만인 5월 9일 퇴원하는 과정을 겪는다. 지금은 신장 기능을 완전히 상실, 2천 cc짜리 ‘Baxter’라는 노란색 용액을 6시간마다 부인이 직접 하루 4번씩 남편 몸에 넣고 빼곤 한다. 배 한쪽 몸에 박은 호스를 통해. 약값이 비싸지만 다행히도 80%의 장애 보험 혜택을 받아 한숨 돌린 중이라며 고마워한다. 박스 안에 약이 좀 쌓여 있다. 이 약은 그의 콩팥 구실을 철저히 대행한다. 그는 전혀 소변도 누지 못하니까.

오른쪽에는 책장이 놓여 있었다. 훑어보니 김현승·황순원·한용운·조지훈·김춘수·이광수·김동인 등의 책들이 가득하다. 그런데 한결같이 전집류다. 그 중엔 동인도 가고 만해도 가고 지훈도 갔다. 현재 황순원 선생과 김춘수 님만 남았다. 거기 책장에 곧이어 그의 이름자도 찍힐까. 박재삼 석 자도, 시전집으로?

 

위험해, 그는

마음 아픈 것은 박 시인의 표정이었다. 그는 아내의 말을 그냥 묵묵히 듣고 있었다. 아무 표정도 없이. 못 알아듣는 것이었다. 나는 바보스럽게 물었다. 지금도 글을 쓰느냐고. 한 4∼5년 정도 전혀 못 쓰세요. 왜, 구술口述 같은 것도 전혀 못 하시나요? 그래요. 그래도 돌아가시기 전에 무언가를 남겨야 할 텐데. 지금으로서는…. 나는 참 안타까웠다. 가슴 한쪽을 바늘도막에 찔린 듯했다. 오히려 그녀는 남편과 매우 좋은 교분을 나누던 이형기 시인을 걱정한다. 마음 아프다고 했다. 이형기 시인도 지금 병중이 아니신가, 두 분이 숙명처럼. 미당과의 40년도 유명한데, 선생은 在森을 이렇게 명명했다. ‘한을 가장 아름답게 성취한 시인’이라고. 그의 감수성은 어떻게 표현할 수가 없다. <울음이 타는 가을강>이 이를 웅변한다 하면 괜찮을까.

그를 이렇게 만든 건 역시 가난과 술 담배였다. 술에 취해 들어오기 일쑤였고, 평생 일정한 직업 없이 자유인으로 살아온 그였다. 잠시 바둑지 등에 기보棋譜를 썼지만, 그 고료가 생활비는 될 수 없었다. 그러나 박 시인은 아무리 취해서 뒤늦게 들어와도 다음날 새벽 5시만 되면 꼭 일어나 단정한 자세로 글을 썼다. 아내의 생각으로도 대단한 남편이었다.

‘그만… 해!’

잠시 잠깐, 정신이 들면 그는 부인과의 인터뷰를 방해했다. 자못 공격적이다. 정신의학상의 ‘공격성aggression’은 파괴적 성향과 같아서, 환자의 자제력이 약화될 때 특징을 띤다고 한다. 나는 사이코 드라마에서의 ‘보조 자아auxiliary ego’ 역할을 하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주인공(환자)의 상대역 말이다. 정신의 안으로 기어들고 싶다. 그치만, 이건 연기일지 몰라. 그는 가끔씩 혼미에서 돌아왔다. 부끄러움을 알고 있었던 거다. 부끄러움을 안다는 건 참으로 인간적이다. 인간만이 부끄러움을 참되게 안다. 소영아, 소영아, 그만 해…. 아내를 부를 때 박 시인은 반드시 딸 이름을 부르며 우리 보고 그만 가라는 시늉을 한다. 부인의 나이와 이름을 여쭌다. 올해가 갑년, 61세. 남편이 와병 중이라 지난 번에 그냥 조용히 자식들과 아침을 지냈다고 한다. 이름은 金正立. 흥미롭다. 正立이 남편 박 씨와의 만남은 중매였고,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운명적인 해후였다는 것. 아이들 셋 중에서 딸은 이미 결혼했고, 사업하는 큰아들(32세)과 대웅제약 연구원인 작은아들(28세)은 아직 미혼이다.

 

그는 이렇게 생애를 보냈다

1933년 그는 4살까지 일본 동경에서 출생, 4살 때까지 살다가 어머니의 고향인 삼천포로 온다. 초등학교 졸업 후 삼천포여중에서 사환 노릇을 하는 마음 아픈 시절을 보내다가 교장의 도움으로 야간중학교에 입학하게 되고, 2학년 때 생애의 전환점이 된 김상옥 시인과 만난다. 바로 그분을 국어 교사로 모시게 되면서 시를 공부하게 된 것이다. 삼천포고를 졸업한 뒤, 1953년 《문예》지에 모윤숙 여사로부터 <강물에서>로 첫 추천을 받고, 이어 1955년 《현대문학》에 <섭리>(유치환), <정적>(서정주)으로 추천 완료, 데뷔한다. 1955년엔 《현대문학》 창간과 함께 편집 사원으로 입사, 1963년까지 근무한 뒤 고대 국문과에 입학해서 다니다가 3학년 때 중퇴를 하다.

1957년 <현대문학 신인상> 수상. 1961년 구자운, 박성룡, 박희진, 성찬경 등과 함께 <1960년대 사화집詞華集> 동인으로 참여하면서 1962년에 처녀시집 《춘향의 마음》을 출간하고, 1963년 《문학춘추》 창간에 참여하여 1년 동안 근무한다. 이어서 1965년 《대한일보》 기자로 입사하여 3년간 근무. 1967년에 <문교부 문예상>을 수상한 뒤, 1970년에 제2시집 《햇빛 속에서》를 펴내고 이때부터 《서울신문》 《대한일보》 《국제신보》 등에 바둑 관전기를 쓰기 시작하면서 실질적으로 가사를 돕는다.

1975년 제3시집 <천년의 바람>(민음사)과 1976년 제4시집 <어린 것들 옆에서>(현현각)를 출간하고 이를 계기로 1977년 제9회 <한국시협상>을 수상하다. 곧 제1수필집 《슬퍼서 아름다운 이야기》(경미문화사)를, 1978년은 제2수필집 《빛과 소리의 풀밭》을 고려원에서 출간한다. 이듬해에 제5시집 《뜨거운 달》(근역서재)과 1980년 제3수필집 《노래는 참말입니다》(열쇠)를 펴낸다. 계속해서 1981년 제6시집 《비 듣는 가을나무》(동화출판공사)를, 1982년엔 제4수필집 《샛길의 유혹》(태창문화사)을 출간한 뒤 제7회 노산문학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누리다.

1983년도 쉬임없는 출간은 계속. 수필선집 《숨가쁜 나무여 사랑이여》(오상출판사)·《바둑한담(閑談)》(중앙일보사)>·제7시집 《추억에서》(현대문학사)를 펴내면서 제10회 한국문학작가상을 수상한다. 1984년 자선시집 《아득하면 되리라》(정음사), 1985년 제8시집 《대관령 근처》(정음사)를, 제9시집 《내 사랑은》(영언문화사)과 1986년엔 수필집 《아름다운 삶의 무늬》(고려원)를 간행하고, 《차 한 잔의 팡세》(자유문학사)·제10시집 《찬란한 미지수》(오상사)를 잇달아 펴낸다.

이 해에 중앙일보 시조대상을 수상하고 시선집 《간절한 소망》도 간행. 1987년 문학사상사에서 《바다 위 별들이 하는 짓》(33選)을, 그리고 《울음이 타는 가을강》 《가을 바다》 등의 선집을 발행한다. 그리곤 실천문학사에서 제11시집 《사랑이여》를 상재하고 제2회 평화문학상도 받는다. 1988년엔 시선집 《햇빛에 실린 곡조》를 펴내면서 제7회 조연현문학상을 수상. 1990년 수필집 《미지수에 대한 탐구》(문이당)와 제12시집 《해와 달의 궤적》(신원문화사)을 펼쳐낸다. 연이어 1991년, 민음사에서 낸 제13시집 《꽃은 푸른 빛을 피하고》 이후 인촌상仁村賞을 수상한다. 병상에서 1966년 《다시 그리움으로》(실천문학사)를 상재하는 투혼을 발휘하기도. 한마디로, L.A. 다저스 팀 선발투수 박찬호의 역투 이상이다.

이처럼 그는 점점 ‘아름다운 하강’을 그리며 우릴 전율시켜 왔다. 아름다운 하강은 곡선을 그리는 법이다. 하강은 그러므로 제 갈 길을 닦도록 애쓴다. 한편 신경림은 새로운 <길>을 내면서 ‘길이 사람을 안으로 끌고 들어가/스스로를 깊이 들여다보게 한다’는 깨달음을 보이고, 안토니오 마차도는 ‘그대 걷는 자여, 길은 없다,/바람만이 흔적을’ 낸다고 전했는데, 박재삼 그가 갈 길은 아무래도 후자 같다. 추억이 있고 바람만이 흔적을 내는 길, 그것이 박재삼의 길이다. 전용도로다. ‘전용’은 때로 과속의 만용을 부리곤 한다. 자기만의 길은 곧 통과의례이므로. 그러다가 하강한다. 전율의 하강이다. 바로 그 전율을 터득하는 비법을 말한 책이 있다. ‘신화적’인 내용이 다소 산만하고 지나치지만.

 

하강은 우리가 ‘전율의 터득’이라고 부르는 세번째의 얼굴을 갖고 있다. 초기 그림 형제의 민화집에는 모두 정상인데 단 하나 부르르 떨 줄을 모르는 청년의 이야기가 나온다. 유령, 효수당한 사람, 마귀 들린 고양이, 관 속의 시신들, 별별 것을 다 보여 주어도 소용이 없었다.

아이들은 쉽게 전율한다. 다친 짐승만 보아도 왈칵 울음을 터뜨린다. 그러나 나중에 통제 장치가 몸 안에 들어오면서 사내아이들은 벌레와 짐승을 괴롭히고 죽인다. (140∼141쪽)

그러나 최근의 해오라기, 사슴, 거위, 공작들에 대한 방대한 관찰에서 특별한 생존 가치는 없는 동물의 의식 무용도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것은 이를테면 ‘전시展示’의 춤이다. 그런 전시에는 아름다움과 의미심장함과 익살스런 애교가 공존한다. 인간은 앞을 전시하는 경향이 있다. 인간은 얼굴의 아름다움을 강조한다. 얼굴에는 감정이 나타난다.

(…중략…)

그 춤에서는 갈망, 아름다움, 높푸른 기상이 표현된다. 형식의 시공간에 담긴 에너지는 그것을 본 다른 짐승들을 촉발시킨다. 그것은 자극의 춤이다. 사건들은 보이기 위해 연출된다.(284∼285쪽)

‘전시는 자극’이란 말이 매우 흥미롭다. ‘전시’의 하강─ 은 이렇게 해서 끝난다. 나는 영화 <훼드라>를 생각한다. 마지막 장면이다. 생전에 그는 ‘자극의 춤’을 춰본 적이 없을 것 같다. 인간이 꾸미는 얼굴 역시 ‘전시’라는 것은, 좋은 얼굴이 타인을 자극시킴을 일컫는다. 그에게 아름다운 전시가 있었을까. 있었을 것이다. 정말 있었을까. 아니, 벌써 ‘갈망, 아름다움’ 등을 지나 지금 어디쯤 가고 있는 걸 게다. 시인 로버트 블라이Robert Bly의 인상적인 산문집 《남자만의 고독》(우리 제목이 좀 못마땅하나 원제는 《Iron John-A Book About Men》, 이희재 역, 고려원, 1992)은 건강한 남성상을 그린, 아주 묘한 책이다. Iron John이란, 그림 형제의 독일식 표현으로서 야성미가 넘쳐 흐르는 ‘철의 한스’를 뜻한다. 여기서는 신화가 등장하는데, 바른 의미의 신화를 얘기하는 자리에서 블라이는 문화도 시간적 도식을 벗어나야 한다는 견해를 제시한다. 어느 시간에도, 어느 문명에도 이 보편적 방법론이 적용된다는 그의 중심생각은 시인으로서의 풍부한 상상력에서 화사히 활짝 핀다. 여기서 박재삼의 화사한, 풍부한 상상력의 시 한 편을 보자.

 

1

화안한 꽃밭 같네 참.

눈이 부시어, 저것은 꽃 핀 것가 꽃 진 것가 여겼더니, 피는 것 지는 것을 같이한 그러한 꽃밭의 저것은 저승살이가 아닌 것가 참. 실로 언짢달 것가 기쁘달 것가.

거기 정신없이 앉았는 섬을 보고 있으면, 우리가 살았닥 해도 그 많은 때는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이 숨소리를 나누고 있는 반짝이는 봄바다와도 같은 저승 어디쯤에 호젓이 밀린 섬이 되어 있는 것이 아닌 것가.

 

2

우리가 소싯적에, 우리까지를 사랑한 남평 문씨 부인은, 그러나 사랑하는 아무도 없어 한낮의 꽃밭 속에 치마를 쓰고 찬란한 목숨을 풀어 헤쳤더란다.

확실히 그때로부터였던가, 그 둘러썼던 비단 치마를 새로 풀며 우리에게까지도 설레는 물결이라면,우리는 치마 안자락으로 코 훔쳐주던 때의 머언 향내 속으로 살닳아 마음닳아 젖는단 것가.

 

3

돛단배 두엇, 해동갑하여 그 참 흰나비 같네.

─ <봄바다에서> 전문

 

이광호에 의하면 박재삼 정서의 원형은 ‘슬픔’이다. 나는 이를 ‘서러움’으로 보고 시인에게 한없이 취한다. 유독 박재삼의 서러움은 ‘달빛 받은 옹기전의 옹기들같이/말없이 글썽이고 반짝이던 것’과 품새가 같다. ‘가난’이 모티프지만 그의 가난이 무척 아름다운 걸 어쩌랴. 그로서는 진정 하염없고 찢어지는 아픔이었지만, 내겐 그것이 사랑을 빗댄 ‘서툰 기쁨’이거나, ‘소년으로 돌아오는/(이)신선티 신선한 허망’(<신록에 접을 붙여>)에 가깝다. 그의 정서가 담긴 고향의 원형도 물비늘과 햇빛에 반짝이는 미류나무로 변신하여 존재한다. 인용시 <봄바다에서>에 의하면 봄바다의 결은 아주 비극적이나, 상대적으로 화사한 몸짓을 갖는다고 한다. 죽음마저도 전혀 아름답게 치환시킬 줄 아는 능력이 뛰어나다. 여기서의 가난은 추억이지 상실이나 아픔이 아닌 것이다. 그의 사랑은 이처럼 진실한 노래로 나온다.

 

사랑하는 사람아,네 맑은 눈

고운 볼을

나는 오래 볼 수가 없었다.

한정 없이 말을 자꾸 걸어오는

그 수다를 당할 수가 없었다.

나이 들면 부끄러운 것,네 살냄새에 흘려

살연애나 생각하는

그 죄를 그대로 지고 갈 수가 없다.

─ <과일 가게 앞에서> 부분

 

마음 비우기. 마음을 비워 둠. 그의 빛부신 마음결이 너무 눈부셔 나는 오래 바라보지 못한다. ‘나이 들면 부끄러운 것,/네 살냄새에 홀려/살연애나 생각하는’ 시적 화자는 분명 죄인일 수밖에 없다. 그저 시적 화자처럼 ‘살냄새에 홀려/살연애나 생각하’며 죄 아닌 죄를 지을 수밖에. 나는 춤춘다. 탭 댄스를 한다. 얼씨구나, 춘다. 긴 목을 앞뒤로 젖히며 엉거주춤 오좀 싸며, 김덕수의 사물놀이 패거리처럼, 얼쑤! 어깨 올리고 엉덩뼈다구 들썩이며 취해서. 그는 병든 몸으로, 지친 몸으로 다시 외친다. ‘나는 무엇을 잘못했는가.’ ‘아, 나는 (이제) 무엇을 이길 수가 있는가.’ 나는 무엇을 잘못했는가.

 

바닷가에서 자라

꽃게를 잡아 함부로 다리를 분질렀던 것,

생선을 낚아 회를 쳐 먹었던 것,

햇빛에 반짝이던 물꽃무늬 물살을 마구 헤엄쳤던 것,

이런 것이 일시에 수런거리며

밑도끝도없이 대들어오누나.

─ <신록을 보며> 부분

 

잘못은 죄로 발전한다. 여린 시적 화자는 비극성을 황홀감으로 바꾸는 솜씨를 보인다. 연작시 <追憶에서 67>은 ‘晋州장터 생魚物전에는/바다밑이 깔리는 해다진 어스름을,//울엄매의 장사끝에 남은 고기 몇 마리의/빛 發하는 눈깔들이 속절없이/銀錢만큼 손 안 닿는 恨이던가/울엄매야 울엄매’라며 체읍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 비극적 황홀은 박재삼 시인의 전매 특허다. 감각의 결, 그 촉수는 결코 감상感傷을 지향하지 않으면서도 특이하다. 그는 <잃어버린 恨>이란 제하의 수필에서 ‘녹음 아래 환한 모시옷이 가진 아름다움’이 사라지는 세태를 안타까워한 적이 있다. 모시 빛에 짙은 녹색을 대비시킨 감각은 탁락(탁월) 이상이다.

그의 ‘서러운 아름다움’은 지독한 가난과 추위를 이겨오면서 내성을 만들어온 오기傲氣로부터 출발한다. 그는 ‘가장 슬픈 것을 노래한 것이 가장 아름다운 것을 노래한 것’이라는 누군가의 말을 큰 믿음으로 오래도록 견지해왔다. (시인의 딸이 그걸 똑 배웠다. 중1 때 교내 백일장 대회에서 장원한 시구 중 ‘장독대 옆에 선 기인 장대로/휘둘러 보려므나 저기 저 하늘을,/끝없는 그 하늘 끝이 어딘지’라는 부분은 놀랍기만 하다. 어른이 도저히 흉내내지 못하는, 아이의 순수한 시적 발상이 우리에게 두고두고 읽힌다.) 흔히들 박재삼을 거론하면서 <한恨>을 素月 식의 전통적인 것으로 승화시킨 시인으로 꼽지만, 그러나 나는 ‘전통적인 한의 시인’으로 보는 데는 분명히 반대한다. 박 시인의 정서를 깊이 캐볼 연구과정 개설이 시급하다. 저들이 말하는 이른바 ‘한’의 개념을 나는 오히려 ‘박재삼 특유의 아름다움’으로 치환한다. 슬픔을, 서러움을 가장 아름답게 처리한 시인이 박재삼임을 믿는다. 허나, 더 숙의할 필요는 있다. 박 시인을 필두로 이 범주에 해당하는 여러 시인의 시편을 종합·분석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다음의 시 <목섬 이야기>는 그의 소박맞은 이모를 연상시킨다. 어쩌면 ‘사랑하는 아무도 없어 한낮의 꽃밭 속에 치마를 쓰고 찬란한 목숨을 풀어 헤쳤’다는 시 <봄바다에서>를 그렸을 것 같다. 어린 시절의 깊은 아픔이 계속해서 그의 시세계를 지배하고 있다는 증거다.

 

우리의 바닷마을에 옛날엔 바람난 가시내가 있었다 한다. 바닷바람이 무서웠더란다. 치마끝에도 이는 바람은 꼭 鬼神 소리라던다. 사람들의 눈 흘기는 눈짓보다도 더욱 몸을 휘감고 보채는 바닷바람이었더란다. 무서워 방에 앉아 있을라치면 또한 아쉽기도 한 바람 소리였더란다. 그 바람의 한 자락을 잡을락했던지는 모르지만 하루에도 몇 차례를 방문을 차고 머리 헝클어진 채 바다 쪽으로 내닫더란다. 그러나 바람에 얹힌 집채만한 물고래에 무서움 질려 집으로 돌아오곤 하더란다. (밑금:글쓴이)

─ <목섬 이야기> 전문

 

‘바람의 한 자락’은 무엇일까. 시적 화자는 왜 바람의 몸통이 아닌 바람의 깃털을 잡으려는 걸까. 여기서도 깃털론은 ‘찬란한 미지수’로 남는가…. 또, 이 시에는 ‘바람’의 낱말이 계속 등장한다. 바람난 가시내·바닷바람·치마끝 바람·바람 한자락 등. 그는 부는 바람을 느껴 맞으며 무슨 상념에 젖었을까. 어딘가로 하늘하늘 날아가고 싶었던 건 아닐까. 이 또한 알 수 없으리.

그러고 보면 그는 한 마리 나비다. 애벌레에서 갓 탈바꿈한, 마치 백목련 잎 한 장이 크리넥스 통에서 튀어나온 듯한 모습의, 연두가 섞인 노랑나비. 요새 장안은 ‘승희 열풍’이다. 승희란 이름이 괜찮나 보다. 세계를 춤으로 휘어잡은 조선여자 최승희, 글쓰는 김승희, 옷 벗는 이승희…. 반나로 춤추는 최승희의 충격적인 보살춤을 보셨는가.

어느 날, 섹시한 누드 모델 이승희가 한국땅에 왔다. 물론 우린 사람과 누드라는 상품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법을 알고 있다. 이승희의 누드는 자기 몸의 표정이 상품이다. 그러므로 우린 몸이라는 객관적인 상품을 보는 것이다. 벗든 벗지 않았든─. 김승희의 시와 산문이 주는 예술 세계 역시 결국은 상품일 것이다. 세계적인 톱 모델 이승희를 ‘할리우드의 노랑나비’라 하더군. 기분 나뻐, 여기서도 사람(인종) 색깔을 구분해야 하나. 어쨌든 아름다운 누드가 ‘포르노냐, 예술이냐’로 말들이 많지만 두 가지 다 철저히 상품은 상품인 것이다.

헤르만 헤세(1877~1962)의 나비를 생각한다. 그는 그랬다. 나비와 꽃에서 한결같이 ‘삶의 무상無常’을 읽었다. 다만 그들에 대한 애정이 대단했지. 나비 채집 습관을 만들어준 그의 나비 사냥은 유명하지 않은가. 나비에 관한 그의 상상력 또한 가히 시적이다. 부처가 그랬던가, 마지막 설법에서 고향의 나비를 보고 ‘나의 스승 그대에게 감사드린다’고. 특히 나의 경우, 노랑나비는 영혼의 심볼 같은 느낌을 받는다. 나는 영혼이 노란 빛을 띤다고 생각하므로. 사실 작은 노랑나비를 보면 우아·사랑스러움·아름다움이 감촉되지 않는가. 그래, 박재삼은 죽어 나비가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린 그를 추억할 것이다, 노랑나비 한 마리로.

김훈은 《내가 읽은 책과 세상》(푸른숲, 1989)에서 박재삼의 ‘추억’을 말한다.

 

경남 삼천포 바닷가 오두막집에서의 그의 유년시절의 가난은 슬픈 전설과 같다. 어머니는 광주리로 멍게장사를 했고, 아버지는 지게로 노동을 했는데, 햇빛이 ‘쟁쟁쟁’ 내리쬐는 바다는 그 끝없는 무정형의 출렁거림으로, (…중략…) 그의 집안의 남자 어른들은 고무신짝 같은 작은 배를 타고 이 바다로 나간 후 돌아오지 않고, 소박을 맞은 이모는 모래밭에 고무신을 곱게 벗어놓고 그 바다에 뛰어들어 죽었다.

(…중략…)

박재삼은 경남 삼천포 해안에서 3살 때부터 20살이 넘도록까지 살았다. 여관 종업원으로 취직한 형이 가져다주는, 손님이 먹다 남긴 김밥을 바닷가에서 씹어먹기도 했고, 기부금이 없어 중학교에 입학하지 못하던 날도 그는 물결높은 바다와 거기에 떠가는 배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멍게장수를 도와 멍게를 까며 밤을 새우던 유년시절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가난을 사회학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다시 생각키 어려운 지독한 가정환경을 김훈은 이렇게 정리한다. 그의 가난은 빈곤이 아니라 ‘서정’이라고. 그리고 보면, 그의 가난은 운명적이라는 생각에 미친다. 곧이은 병, 그리고 술과 담배, …욕창. 그가 이처럼 욕창으로 극한 상황에 처한 점에 대해 여러 문인들이 할 만큼은 했다. 서벌 시조시인을 비롯, 노향림 시인 등이 주선한 <박재삼 시인 돕기 모금 운동>에 앞장선 그들에게서 진정 갸륵한 정성을 읽는다. 큰 모금액도 들어왔다. 그러나 애처럽게도 그는 죽는다. 왜 그토록 가난했지. 왜 그는 말년에 이곳 저 출판사에서 마구잡이로 책을 만들었나. 인세 때문? 시선집 《울음이 타는 가을강》 서문을 읽고 나는 가슴이 한참 저려와서 혼났다.

 

결국 아무리 열심히 한다고 해도 잘 안 되는 것이 이 길의 허망함만 느낄 뿐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고는 하지만 또다시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신들메를 고칠 수밖에는 없다. 그리하여 마지막에는 내 초라한 주머니가 조금은 넉넉해지기를 바란다. 이 이상 무슨 말을 하겠는가. (밑금:글쓴이)

이 글을 쓰다가 한참 망설였다. 죄송하지만, 나는 박 시인의 책을 갈무리하는 중에 덤핑판을 많이 만났다. 개중에는 시인의 직인이 날인된 무명 출판사도 보였다. ‘그래도 책을 내어 준다는 출판사가 내게는 고맙기 짝이 없다. 적지만, 인쇄(‘인세印稅’의 오기誤記)라는 것을 만져볼 수 있기 때문이다’ 1989년에 나온 어느 무명 출판사의 수필집 서문이다. 양심껏 말하지만, 그가 이러한 ‘잘못된 만남’을 부인하진 못하리라. 최근 들어, 그는 또 같잖은 인물들을 시인으로 내보냈다. 정치인이 시인 되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독재 정권 시절에 문제 많던 국회의원을 정식으로 등단시킨 건 문단의 수치다. 작품 재심再審 기관은 없을까. 결국은 양심이란 과정이(무서워라,) 최종심이지만. ‘정경政經 유착’이 아니라 ‘정문政文 밀착’이다. 이때 만큼은 인간 박재삼이가 죽도록 싫다. 위험한 발상이지만, 그러기까지 의심되는 유착 성향이 싫은 탓이다. 나를 선選해 주실 때의 박 시인은 결코 그런 분이 아니었다. 솔직히 존심尊心 상한다. 마음이 병들었을까. 그런데, 그러기엔 내 마음이 너무 아리다. 난 그 분께 도움 드린 적이 없는, 은혜도 모르는 무뢰한. 근데 왜 이렇게 떨려올까….

그를, 누가 이렇게 처참하게 만들었는가. 바로 너, 그리고 우리다. 중진·중견·신인 모두의 철저한 외면과 무관심 탓이다. 분명히 전제하지만, 물질만이 능사는 아닌 것을. 그러면 정말 안 되는 거다. 그가 죽으면 조문하러 올 거지? 빠들빠들한 지폐 몇 장을 바치는 일로, 그걸로 책무를 다 했다고 하겠지. 아까운 사람 하나 죽었다고, 평생 고생하다 무서운 병으로 말라 죽었다고. 그건 ‘장난의 운명’이라고. 그러면 정말 안 되는 것이다.

 

그분께 편지를 드리자

매우 겸손히, 이 못난 글을 읽는 분들께 간구한다. 지금 한 장의 엽서를 꺼내어 박재삼 시인께 보내는 편지를 쓰자. ‘서울시 중랑구 묵동 177-3’이 주소다. 우편번호 131-140, 전화번호는 (02)973-5567. 지하철은 7호선, <태릉입구역>이 가까운 <먹골<墨洞>역>이다. 거기서 1번 홈으로 나가면 태능중학교 올라가는 길이 나오는데, 한 20미터 쯤 가다가 오른쪽을 쓱 보면 <토정쇠고깃집>이 나온다. 고깃집을 돌아 김현식의 노래 같은 ‘골목길’로 들어가면서 세번째 집이 댁이다. 문패도 있다. 그가 가기 전에 한 편의 시를 쓰도록 하자. 혼수상태에서의 유고시라도 있어야 할 게 아닌가, 김수영의 <풀> 같은 유고시가. 박정만이 스스로, 광활한 우주 속으로 사라진다며 엄숙히 외쳤던 고뇌의 울음소릴, 남은 우리가 소중히 모셔야 할 게 아닌가. …그리고 비로소 ‘나’를 돌아보는 것이다.

 

우리는 곧 그의 訃告를 받을 것이다

아쉬움으로 물러나면서 비로소 나는 거실에서 南天 선생의 맑은 그림을 보았다. 머리맡에는 丘庸 시인의 작은 그림도 있다. 하나의 기도문 같았다. 댁을 나오면서 대문 바닥에 떨어진 우편물을 주워든다. 그 정성스런 포장지도 무표정. 누군가 가슴 설레며 보내준 새 시집도 그는 읽지 못한다…. 나는 겨우겨우 부인을 달래서 기념사진을 찍는다. 내가 말해놓고도 실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념사진’이라니. 기념사진 속엔 김정립이 아닌 박재삼이 있어야 한다. 그래도 우리는 뻔뻔스럽게 박재삼을 뉘어놓고 ‘우리만’ 찍었다. 부인은 웃어달라는 나의 주문에 몇 번을 찡그리는가 싶더니 겨우 포즈를 잡아준다. 오후가 무르익었다. 비로소 엷게 웃음 짓는 부인의 인삿말 뒤로 황급히 댁을 빠져 나온다. 내 가방 속엔 박 시인의 마지막 모습이, 마치 그의 데드 마스크가, 아직 인화되지 않은 필름이 아직 현상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그랬다, 나는 계속 찍고 찍어댔다. 무슨 알지 못할 한에 사무쳐 부인 몰래 찍었다. 슬픈 것은, 그가 카메라 앵글을 전혀 인식하지도 못한다는 점이었다.

우리는 어쩌지 못한다. 그래, 우린 앞으로도 어쩌지 못할 것이다. 그러는 사이, 그는 한 많은 세상의 허물 벗은 한 마리 노랑나비가 되어 우리 곁을 떠나 삼천포로 날아갈 것이다. 영물이라는 나비가 그렇다던가, 죽을 땐 조용히 산수 좋은 물 골짜기를 찾는다고. 오래 전에 나도 화엄사 골짜기에서 나비 한 마릴 보았다. <창작교실>이 열린 따뜻한 오후였다. 내가 <호접몽>에 취한 것도 아닌데, 불현듯 노랑나비 하나가 곁으로 날아왔다. 나비는 무언가를 찾는 듯했다. 안식처였다. 아슬히 바위 사이를 날다가 천천히, 아주 천천히 흐르는 물에 제 몸을 맡긴다. 그리곤 아주 조용히 수면에 날개를 편다. 이승의 제 무거운 육신을 저쪽으로 운반해 간 것이다. 햇볕이 한없이 따스히 느껴지고 햇빛이 수면에서 남은 몸빛을 태우는 오후, 늙음에서의 영원한 일탈이며 참한 안식을 나는 목격한 것이다.

 

도대체 작가는 왜 쓰는가. 작가는 그렇게 쓰다가 쓸쓸히 가야 하는가. 나는 배우 제임스 딘을 닮은 젊은 시절의 제임스 미치너James A. Michener(1907∼현재)에게서 그 답을 읽는다. 그는 뉴욕에서 태어나 하버드 대학 등에서 공부한 학자요 편집자다. 아흔을 넘은 그에 의하면, 작가로 태어난 사람은 작가가 될 수밖에 없다는 ‘작가 운명론’을 갖고 있다. 그의 저서 《문학적 회상Literary Reflections》을 보면 작가로서의 장단점을 솔직히 기록한 점이 참 인상적이다. 특히 창작 방법을 말하면서 아우어바흐의 《미메시스Mimesis》를 독서하라는 주문은 특이하며 많은 공감을 준다. 그렇다면 그가 성서와 호메로스를 꼽은 것도 당연한 일이다. 이 모진 시대, 성서야말로 고전의 대명사 및 보통명사가 되지 않았는가.

나는 그가 문학에서 역사적 관점을 갖는 자세에 대해 큰 관심을 갖는다. 거기서 그는 상징과 은유의 위험성을 지적하고 문장의 적확성도 강조한다. 요즘은 문장에 비문이 너무 많아 스스로 문학 장르의 위기를 초래한다는 지적이다. 동감한다. 이 책은 전문 번역가 이종인에 의해 《작가는 왜 쓰는가》라는 제목으로 1995년 미세기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이 책을 보면서 나는 요즘 독서력을 과시하려는 일부 시인·작가들의 태도에 작은 혐오감을 갖는다. 작가가 애써 저술한 책을 쾌도난마식快刀亂痲式으로 물 말아먹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자는 바보 중에서도 ‘상바보’다. 그런데 진정한 자신을 깨닫지 못한다. 가벼운 독서가讀書家 중에는 유명세를 빙자하여 지면을 마구잡이 더럽히는 일들이 흔해졌다. 저들이 <양서>의 일방통행을 훼방하고 있다. 지들이 천재라고? 흥, 그건 광분狂奔이다. 정신주의가 아닌 ‘병신주의’다. 책 읽기의 공주병·왕자병·신데렐라 환자들이 득시글거리며 독서의 혼탁성을 방조하고 있다. 그런데 감시자가 없다. 비판은 여기저기서 난무하나 비평은 정도正道를 비껴가며 비겁하고, 지면은 글의 호불호好不好와 상관없이 ‘잡기 연예인’들로 가득하다. 생각이 동반하지 않은 읽기는 바른 독서일 수 없다. 줄기 아닌 병든 잔 가지로 나무를 키워서야 어디 질 좋은 떡잎이 나올 것인가. 상상력으로 무장된 ‘생각’이 스스로 길을 내고 물꼬를 터야 한다. 그런 면에서 나는 미치너의 성실무구한 책읽기를 믿는다. 그의 작품 가치 및 성공 여부를 떠나, 이러한 소중한 사고는 우리에게 귀감이 되고도 남을 것이다. 진솔한 고백은 아무나 남기는 게 아니다.

 

이 책에서 나는 새삼 박재삼을 읽는다. 그가 그랬다. 어린 시절을 제외한 평생 40여년을 시작詩作에 몰두했다. 시 쓰는 일이 거의 전부였는데도 지금 그는 남은 게 아무 것도 없다. 헐벗었다. 독자만 있다. 그는 어떤 원칙이 있었을까. 시 쓰는 일 말고─. 있었을 것이다. 그가 어느 만큼이나 생활인이었을까. 진정한 자유인인가. 진정한 독자가 있는 한 그는 참 자유인일 수밖에 없겠지만. 그런데 말이다. 그의 자유로의 도피 행각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가 사는 먹골의 한켠에서 나는 ‘죽음’이란 존재의 실상과 ‘주검’ 자체를 목도했다. 죽음이 실상이라고? 웃긴다. 아니다, 그래도 그렇진 않다. 죽음 직전의 검은 멍을 나는 보았다. 그의 몸은 참혹하다. 나무토막이었다. 그래선지 신문지상의 ‘토막’이란 단어만 봐도 몸이 옴싹해진다. 잘리지만 않았지 그의 몸 1/2은 무표정한 토막이다. 몸 토막의 1/2은 또 썩었다. 아아 그는 더 살아야 해. 실상 어떻게든 그를 살려야 한다는 문인들의 의지로, 지난 겨울부터 그를 도왔었지. 어떤 작가는 문청 시절 <울음이 타는 가을강>에서 진한 감동을 받은 바 있어 <박재삼 살리기 운동> 때 큰 돈을 내기도 했다.

씁쓸하다. 그이처럼 평생을 가난에 찌든 사람이 있을까. 신은 불공평하신 분이 아닌데. 그의 시 <아득한 청산을 보며>에서의 ‘아득한 청산’은 제주 어디 쯤, 제주의 오랜 탐라 쯤 있을까. 내게 있어 탐라란 잉카·마야의 동류항이다. 그를 여기 모시는 게 어떨까. 당신의 ‘풍장’을 고이 모심이 어떠할까. 제주시·성산포·서귀포의 착하고 고우신 시인님들. 특히 최남단 서귀포 어구, 잉크를 풀어논 바닷물에 그의 시신을 바람인 양 널어놓으심이. 이 작품은 박 시인의 현재를 잘 대변하고 있다. 설명은 외려 군더더기.

다른 기억이지만 그는 참 친절하고 정이 많다. 신사다. 시집을 보내면 틀림없이 답장을 보낸다. 그의 이름 석 자를 한자로 반듯하니 적어. 비싼 책, 힘들게 만든 책을 받고 뻔뻔하게 엽서 하나 쓸 줄 모르는 문인을 그는 싫어한다. 난 가끔 나쁜 사람이다. 귀한 시집을 받고 많은 필자들에게 결례를 했다. 그런데 답장을 보내지 못한 데서 오는 안쓰러움이 늘 머리를 맴돈다. 고백하자면, 그 분의 시집을 늘 생각하고 있다는 변명의 너스레를 떨어본다. 바아보.

언젠가 당신을 만나는 자리에서 맥주 한 병을 시켜드린 바 있다. 그때 당신께서 그랬다. 한 잔을 겨우 들이켰다. 아파서, 딱 한 잔만 마셔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그 표정에서 미세한 감미로움을 느꼈다. 기쁨이 몸에 넘쳤다. 얼굴이 발그레진 그는 잠방이 소년 그대로였다. 표정을 읽느라고 난 한 잔도 마시지 못했다. 잠시 잠깐의 평화. 아아, 온건한 고요의 평화…. 이어서 당신은 한 잔을 더 마시고 싶어 했지. 만류하니 이내 쓸쓸한 웃음을 비친다. 발그레, 온건, 쓸쓸…. 돌아오는 길은 내가 모처럼 슬퍼졌다. 들축이는 지하철 차창에 내가 우두커니 있고, 기자가 그렇게 서 있고, 사람들이 그렇게들 있었다. 모딜리아니의 군상들이었다. 이대로 있다가 우리는 각자의 출구로 말없이 헤어진다.

박재삼, 그와도 이렇게 말없이 헤어지리라. 그가 누웠는 곳에 가서 우리는, 살아 남았다는 묘한 안도감과 ‘왜 죽었니,’라는 질책성 자위와, 곧 닥칠지도 모를 상황의 불안감을 소줏잔에 섞어 저마다 짐짓 슬픈 표정을 지을 것이다. 나도 자정 너머 잠시 혼자 있다가, 한쪽서 머뭇거리고 기웃거리다가 돌아올 것이다. 슬픔에 잠긴 척, 괜시리 엄숙해져서 그와 못다 나눈 얘길 귀로 눈으로 나누다가 돌아올 것이다. 그러면 누군가가 서늘한 그의 곁에서, 마치 시인 자신에게 부친 듯한 이 시를 외우리라. ‘그리움만한 중량의 (그) 무엇인가가 되어’.

 

친구여 너는 가고

너를 이 세상에서 볼 수 없는 대신

그 그리움만한 중량의 무엇인가가 되어

이승에 보태지는가,나뭇잎이 진 자리에는 마치

그 잎사귀의 중량만큼 바람이

가지 끝에 와 머무누나.

─ <친구여 너는 가고> 부분

 

그러면 저기 빈 자리 한구석 쯤, <중앙일보> 李京哲이가 억수로 취한 슬픔의 얼굴로 <찔레꽃>을 부르리라. 또 다시 부르르, 전율을 섞어 목 놓으며 끊임없이.

(1997년 6월호)

 

편집주 주 : 이 글은 박재삼 시인과 지상에서의 마지막 인터뷰였다. 본고가 나간 지 한 달이 안되어 박재삼 시인은 우리 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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