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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신경림
청룡 흑룡 흩어져 비 개인 나루 잡초나 일깨우는 잔바람이 되라네
장경기
낮이면 주막 뒷방에 숨어 잠을 자다 지치면 아낙을 불러 육백을 친다그날도 몹시 취했다. 이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을 것 같았다. 아무 데도 내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책을 읽는 일도 시를 쓰는 일도 팽개친 지 아주 오래였다. 내가 하는 일이라고는 저녁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봉을 잡아 술을 마시거나 돈 몇 푼 뜯어가지고 애기놀음방에 가서 섰다나 마작 따위로 밤을 보내는 일이었다.
아편을 사러 밤길을 걷는다 진눈깨비 치는 백리 산길 낮이면 주막 뒷방에 숨어 잠을 자다 지치면 아낙을 불러 육백을 친다 억울하고 어리석게 죽은 빛바랜 주인의 사진 아래서 음탕한 농짓거리로 아낙을 웃기면 바람은 뒷산 나뭇가지에 와 엉겨 굶어 죽은 소년들의 원귀처럼 우는데 이제 남은 것은 힘없는 두 주먹뿐 수제비국 한 사발로 배를 채울 때 아낙은 신세타령을 늘어놓고 우리는 미친놈처럼 자꾸 웃음이 나온다1)
그렇게 주막 뒷방에서 한밤을 또 보냈던가. 신 새벽에야 나는 발길을 집으로 옮겼다. 뒷산 고원을 뒤덮은 갈대밭은 달빛에 젖은 채, 새파랗게 날들을 새우고 있었다. 그 갈대들은 왠지 그 순간에도 전쟁통에 남편을 빼앗긴 젊고 예쁜 마을 아낙네들을 떠올리게 했다. 얼마 전에는 이를 작품으로 써보기도 했던 것이다.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2)
《문학예술》지를 통해, 문단에 얼굴을 내밀게 해준 <갈대>라는 작품이다. 1956년 늦가을 무렵의 일이었으니, 충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동국대 영문과에 입학한 다음해의 일이었다. 그러나, 그해 겨울이 지나고 다시 봄이 되자 학교도 그만두고, 하향하고 말았다. 그런 후로 이렇듯 신산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셈인 것이다. 밤길은 미끄러웠다. 밤새 싸락눈이 내린 때문이리라. 꿩 발자국일까? 눈 위에 이삭처럼 떨어져 있었다. 나는 그 발자국들을 따라서, 조심스럽게 발을 디뎌나갔다. 고향으로 내려온 이후로, 아니 서울에서부터 생활이란 한마디로 먹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드는 일인가를 학습하는 현장 같은 것이었다. 광부, 농사일, 장사, 공사장 인부, 학원 강사, 학교 강사 등 안 해본 것이 없었다. 태창광산에서 고향 친구와 함께 일한 적도 있었고, 공사장에 나가 막일을 한 적도 있었다. 또, 아편장수의 길 안내로 한겨울을 보낸 적도 있었고, 강사로 학교에 재직해 보기도 했다. 하여간 그렇듯 먹고 살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고 못할 것이 없다는 심정으로 살았는데, 그 무슨 일도 그다지 쉽사리 내 차례로 진득이 머물러주지 않았다. 결국 나에게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오직 증오심, 그것만이 그때 당시의 나를 지탱해주고 있는 셈이었으리라. 모든 사람들을 미워했다. 잘 사는 사람을,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 학식 있는 사람을 미워했다. 가난한 사람을 미워하고 무지한 사람을 미워했다. 더욱 미워한 것은 이른바 시인들이었다. 그들의 성실성을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 그들의 얘기는 전부가 거짓으로 느껴졌다.
고향 충주의 노은국민학교 시절,─ 얘, 이거 정말 네가 쓴 거니?그 다음날 잠에서 깨어났을 때는 점심나절이 지나고 있었다. 몹시 취해서 정신 모르고 잔 때문이었다. 옷에는 흙이 묻어 있었다. 엊저녁 밤길에서 몇 번인가 넘어진 때문이리라. 찬밥 한 술을 물에 말아 마시고 밖으로 나오니 늦가을 햇볕은 이상하리만큼 차가웠다. 술과 놀음에 빠져 이미 마을 사람들의 눈밖에 난지도 오래 전 일이라, 어른들의 부드럽지 않은 시선을 피하듯 강가로 걸어나갔다. 변함없이 파랗고 깊은 수면이었다. 국민학교 3학년 때였던가. 목계로 소풍을 갔을 때, 그때 작은 언덕에 올라섰을 때, 발 아래로 언덕을 길게 휘감으며 흘러가던 그 새파란 강물, 강물을 보는 순간 숨이 턱 멎는 것 같은 감동을 느꼈던 기억이 그리움으로 다가왔다. 강에 바짝 다가붙은 이층집들, 즐비한 가게, 차와 사람들을 실어나르던 너벅배, 담배수납철의 떠들썩하던 풍경도 여간 인상적이 아니었다. 집집마다 젓갈 장단에 노래가 끊이지 않았고, 담배를 바치고 돈을 주머니에 넣은 농사꾼들은 호기 있게 술주정을 했다. 나에겐 어쩐지 그것이 바로 한강의 삶의 모습처럼 느껴지기도 했었다. 그렇듯 목계장터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는 동안에도, 뱃길로는 열씩 스물씩 떼를 지어 뗏목이 지나가고 있었다. 으례 사공들은 목청껏 소리를 높여 노래를 불렀는데, 하나가 하면 다른 하나가 받고 해서 노래가 끊이지 않았다. 정선아리랑 가락인가? 그 출처를 따라잡으려 했지만, 그때마다 노래는 아득히 멀어지고는 했다. 강 어귀에서는 아이들 서넛이 무릎 위로 바지를 걷어올리고 어레미로 민물새우를 건지고 있었다. 수수밭 가에 앉아 그들을 망연히 부러움의 눈길로 바라보고 있노라니, 그 아이들만했던 때의 기억들이 영화처럼 파란 수면에 그려졌다. 그러니까, 시를 맨 처음 써보겠다고 했던 것도 그 목계장터에 다녀왔던 때부터였으리라. 뇌리에 각인된 목계의 풍광을 뜯어 공책의 여백 속으로 옮겨 놓는 작업이 시작된 것이었다. 도교육위원회에서 도 단위 글짓기대회의 장원이 노은국민학교 차지라고 알려온 것은, 내가 어느덧 그 학교에서 가장 시 잘 쓰는 어린이로 통할 무렵이었다. 그 당선자가 바로 나라고 생각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했다. 교사로부터는 미리 축하를 받았고 동무들로부터는 부러움을 샀다. 나는 내 자신이 영웅이 되어 있는 것을 알았다. 이 산골에서 그런 큰 상을 받는다는 것은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마 이때의 내 자신은 걸음걸이마저 달라져 있었으리라. 그러나 며칠 뒤에 온 상장과 상품은 내 앞으로가 아니었다. 그것은 산지기 아들 차지였고 나는 가작에도 뽑히지 못했음이 밝혀졌다. 전교생 앞에서 그 아이가 기계총 오른 머리를 보이면서 교장선생으로부터 상장과 상품을 받아들 때 나는 모닥불이 끼얹혀진 듯 얼굴이 달아올랐고, 만취한 어른처럼 다리가 후들거렸다. 다시는 시를 쓰지 않으리라 나는 어금니를 깨물었었다.
유년시절에 대한 회상장면이 이쯤에 이르자, 내 입에서 나도 모르게 가늘게 한숨이 배여나온 것은 왜일까. 하향한 후로 벌써 몇 년째나 시를 쓰지 않고 있는 내 자신의 처지에 생각이 미친 때문이었을까. 어느덧 해가 지고 있었다. 아이들도 보이지 않았다. 가을걷이를 하지 않은 수수밭에는 해가 넘어가면서 마지막 햇살을 보내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고 있어, 한쪽은 천국처럼 밝고 환한가 하면 다른 한쪽은 지옥처럼 어둡고 컴컴했다. 조금은 두렵기조차 한 풍경이었다. 수수밭을 지나 언덕을 넘어서자 연자방앗간이 보였다. 역시 국민학교시절, 깨북장이 친구 허태순이와의 아픈 추억이 깃들이어 있는 곳이었다. 먼 유년시절, 태순이는 바로 그 연자방앗간 북데기에 나를 숨겨놓고는 그 앞집 사립문을 밀고 들어갔었던 것이다. “왜 오지 말라니까 오니? 내가 너 보러 간다니까. 네가 자꾸 찾아오면 내가 어떻게 사니?” 태순이 엄마의 목소리였다. 엄마가 주었다며, 펼쳐 보이는 보자기에서는 밀기울개떡이 얼굴을 내밀었다. “우리 엄마가 딴 데로 시집을 갔어. 너, 아무한테도 얘기하면 안 돼.”떡 한쪽을 때어주면서 한 말이었다. 녀석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해 있었다. 나는 왠지 가슴 한구석에 슬픔의 물방울이 괴어오름을 느꼈었다.
고향 마을의 폐광 ─ 빈 금구덩이서는 대낮에도 귀신이 울어그날밤도 늦도록 돌아다니다가 한 사공네 집에서 조범벅을 얻어먹고 돌아오니 통금 시간이 다 돼 있었다. 오랜 만에 술을 마시지 않고 잠자리에 들었다. 한데 다음 날은 중병을 치른 것처럼 몸이 나른해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비몽사몽 속에서 안타깝게 외치고 있는 내 자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뿐이었다. “얘들아, 나와라. 나와. 빨리. 그러다가는 죽는단 말야.”그러나 강물 속에 잠겨 있는 아이들은 오히려 깔깔대며 나를 비웃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할머니 등에 업힌 채, 물에 잠겨 있는 새파란 뽕나무에 과실처럼 매달려 있는 아이들을 향해서 안타깝게 외치고 있었다. 오디를 따먹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징소리처럼 기일게 울리며 나를 휘감아왔다. 내가 네살쯤 되었을 때 겪었던 기억이리라. 나는 안타까움 속에서, 어느덧 탄광굴속 같은 곳을 혼자 헤매고 있었다. 온몸에 공포와 전율이 감겨왔다. 아아-─ 눈을 떴을 때는 후줄근히 몸이 식은 땀으로 젖어 있었다. 근 사흘 동안을 밥도 먹는 둥 마는 둥 잠을 잔 셈이었다. 꿈 속에 그 광산은 행정상으로는 한 마을이나, 우리 집에서 2킬로쯤 산 속으로 더 들어가 있는 금점굴이리라. 그러고보니, 그곳에 가본 지도 꽤 오래 되었다. 나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딱히 가야할 특별한 이유도 없이 광산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오늘은 그곳을 배회하며 하루를 보내겠다는 듯이……우리집이 본격적으로 광산과 맺어지기 시작한 것은 해방이 막 되면서 부터였다. 그때 광산은 전성기를 이루었다. 북으로부터 피난민, 만주 등지로부터의 귀환동포로 광산은 빈민의 소도시로 팽창되었다. 다닥다닥 붙은 움막들이 몇백 채에 이르렀고 술집이 즐비하게 늘어서서 진종일 청승스러운 유행가 가락이 끊이지 않았다. 우리 집안에서도, 삼촌은 자본주를 끌어들여 덕대로서 분광의 경영에 참가하게 되었고, 마침내 아버지마저 연상이 되어 광산에 손을 대게 되었던 것이다. 광산과 우리집과의 관계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계속 화약상, 금방앗간, 금분석 등으로 깊이 빠져들어갔다. 명절이 오면 이십여 명의 광부들이 우리집에 모여 돼지를 잡고 순대를 삶으며 웅성대던 모습이 아직도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러나 광산은 또한 내게 가장 큰 상처로 새겨져 있는 곳이기도 했다.
“이 빨갱이들이 금을 가지고 도망치려 했다.” 6·25때였다. 금을 차지하겠다는 사욕에 어두워, 느닷없이 마을에 들이닥친 헌병들이 갱도 속에서 끌어낸 광부들을 심문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도망치는 인민군 패잔병의 행패를 피해 굴 속에 숨어 있었다는 그들의 주장에 대한 대가는 무차별한 권총세례였다. 그들은 내게도 낯익은 삼촌의 친구들이었다. 삼촌도 그들만큼이나 억울하게 죽기는 마찬가지였다. 소위 보도연맹 사건에 연루되어 구속되었고 시류에 휩쓸려 희생당했던 것이다. 그때 그의 나이 서른이었고 내 나이는 열다섯 살이었다.
그날 끌려간 삼촌은 돌아오지 않았다. 소리개차가 감석을 날라 붓던 버력 더미 위에 민들레가 피어도 그냥 춥던 사월 지까다비를 신은 삼촌의 친구들은 우리집 봉당에 모여 소주를 켰다. 나는 그들이 주먹을 떠는 까닭을 몰랐다. 밤이면 숱한 빈 움막에서 도깨비가 나온대서 칸테라 불이 흐린 뒷방에 박혀 늙은 덕대가 접어준 딱지를 세었다. 바람은 복대기를 몰아다가 문을 때리고 낙반으로 깔려 죽은 내 친구들의 아버지 그 목소리를 흉내내며 울었다. 전쟁이 끝났는데도 마을 젊은이들은 하나하나 사라져선 돌아오지 않았다. 빈 금구덩이서는 대낮에도 귀신이 울어 부엉이 울음이 삼촌의 술주정보다도 지겨웠다.3)
그 뒤 오랫동안 내 꿈자리는 언제나 뒤숭숭했다. 낙반으로 깔려 죽은 시체, 금장앗간을 뒤덮는 도깨비들, 굴 속의 귀신들, 이런 것들이 밤마다 나를 괴롭혔다. 나는 광산이 무서워졌고, 그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게 되었었다. 그 광산이 아주 폐광이 되고 만 것은 바로 그 얼마 뒤였다. 지금은 광산 주변에 남아 있는 움막이라고는 불과 다섯 채도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집들 역시 품고 있는 것은 광산이 남긴 상처가 전부였다. 마을의 릴레이 선수요 마라톤 선수로서 운동대회만 닥치면 온 마을의 기대를 한 몸에 모으던 젊은이가, 이제는 낙반사고로 전신 불수가 되어 누워 있는 모습을 언젠가 보았던 것이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는 순간, 나에게 글 쓸 기회가 주어지면 제일 먼저 광산에 관계되는 것을 쓰리라고 결심하기도 했었다. 그것이 마치 나에게는 의무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내 자신의 모습은 어떤가!’ 부끄러웠다. “이렇게 살아서는 안된다. 이렇게 살아서는 안된다.” 유달리 장날을 좋아한 것도 장꾼들의 얘기와 노래 때문이었으리라늘 신세를 지던 소학교 교사를 하는 동무를 찾아가 돈을 구해가지고 이화령을 넘어 문경으로 가는 버스를 탄 것은 그로부터 며칠 지나지 않아서 였다. 내 자신에게도 왜 그랬는가를 명확히 답할 수는 없었지만, 이전에 강가나 광산을 배회하던 때와는 다른 어떤 절박한 것이 가슴 속에 자리잡고 있었다. 내가 찾아간 곳은, 바로 삶 냄새가 물씬 배여나는 장터였다. 콩 한두 되, 깨 두어 됫박을 가지고 거간꾼한테 속지 않으려고 아귀다툼을 하는 아낙네들을 보니 뭔지 모르게 속에서 의욕 같은 것이 생겨나는 것을 느꼈다. 유년시절부터 나는 유난히 장날이면 어떻게든 핑계를 만들어 장터를 쏘다녔었다. 쏘다니다 지치면 나는 거기에서 주막을 하는 친구 이상옥과 함께 주막의 마루에 앉아 술꾼들이 순서 없이 털어놓는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와 연애 이야기, 죽음에 관한 이야기, 빨치산 이야기 등을 들을 수 있었다. 모두가 처음 듣는 흥미진진한 것들이었다. 그러는 동안 늘 몇 사람은 뒤로 빠져 장짐을 베개삼아 비스듬히 누워서는 노래를 흥얼거렸었다. 실상 나는 얘기보다도 그 구성진 노래들이 더 좋았다. 그래서 뜻도 모르고 따라서 흥얼거리고는 했었는데, 그 장사꾼들 가운데는 북쪽에서 피난 온 사람들이 많았던지 지금 생각컨대 그 노래들은 어랑타령, 한오백년, 애원성, 궁초댕기 같은 것들이었던 것 같다. 어쩌면 내가 유달리 장날을 좋아한 것도 장꾼들의 얘기와 노래로 해서 였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문경 장터를 밟던 그 걸음으로 박달재를 넘어 제천으로 갔고, 그 며칠 뒤에는 원주로 갔다. 삶터를 찾아다니는 그런 행보는 곧 떠돌이에 다름 아니었다. 그 후로도 오랫동안 여기저기로 떠돌아다닌 셈이었다. 광산이나 공사장에서 일하는 친구를 찾아가 얹혀 지내기도 했다. 어느 골목에선가는 내 자신에게서, 문득 어렸을 때 보았던 황아장수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했다. 특히 해질 녘이면, 빨간 놀을 배경으로 한길에 박혀 있은 채, 좀체 사라지지 않던 황아장수의 새카만 그 뒷모습,…… ‘장사 장사 황아장사 걸머진 게 무엇인가 아기네들 굴레다리 각시네들 낭자댕기 선비네들 부채끈 도령네들 머리댕기.’어렸을 적 동네에 황아장수가 들어오면 아이들이 뒤따라 부르던 노래였다. 어린 나는 방물장수가 좋아 그를 따라 삼사십 리 이웃장까지 따라다니고는 했었다. 아마도 나의 핏속을 흐르는 떠돌이기질은 그들로 해서 싹을 틔워나갈 수 있었으리라. 그런 떠돌이 생활 속에서 내가 접촉하게 되었던 많은 사람들은 모두 나에게 커다란 감동을 주었다. 그들은 몇가지 서로 공통되는 점을 가지고 있었다. 한결같이 가난했고, 세상에 대해서 원한을 가지고 있었으며, 복수심과 체념으로 조금씩 비뚤어져 있었다. 이 모든 것은 전혀 그들 탓이 아니었다. 그들은 오로지 역사의 피해자요, 체제적 모순의 산물이었다. 이 사실을 깨달았을 때 받은 충격은 컸다. 그 속에서 들끓던 증오심은 마침내 어느 한쪽을 향해 집중되었다.
김관식의 집 방 하나를 얻어들었는데, 그곳이 홍은동 산 1번지였다. 충주읍내 거리에서 문우 김관식과 마주친 것은 그렇게 하향한 이후로 10여년 동안의 방황이 나름대로 가닥을 잡아갈 즈음, 그러니까 1965년의 일이었다. 우리 둘은 반갑기도 하고 한편 어이가 없기도 했다. 그후 나는 김관식 시인의 말만 믿고 아내를 데리고 무작정 상경한 셈이었다. 그의 집 방 하나를 얻어들었는데 그곳이 홍은동 산 1번지였던 것이다. 이 동네에 첫발을 딛는 순간 나는 20여년 전 내 고향의 광산촌이 떠올랐다. 세월이 갑자기 거꾸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해가 지기 전에 산 일번지에는 바람이 찾아온다. 집집마다 지붕으로 덮은 루핑을 날리고 문을 바른 신문지를 찢고 불행한 사람들의 얼굴에 돌모래를 끼어얹는다. 해가 지면 산 일번지에는 청솔가지 타는 연기가 깔린다. 나라의 은혜를 입지 못한 사내들은 서로 속이고 목을 조르고 마침내는 칼을 들고 피를 흘리는데 정거장을 향해 비탈길을 굴러가는 가난이 싫어진 아낙네의 치맛자락에 연기가 붙어 흐늘댄다. 어둠이 내리기 전에 산 일번지에는 통곡이 온다. 모두 함께 죽어버리자고 복어알을 구해온 어버이는 술이 취해 뉘우치고 애비 없는 애기를 밴 처녀는 산벼랑을 찾아가 몸을 던진다. 그리하여 산 일번지에 밤이 오면 대밋벌을 거쳐온 강바람은 뒷산에 와 부딪쳐 모든 사람들의 울음이 되어 쏟아진다.4) 나는 그곳에서 내리 3년을 살았다. 그 기간 동안 우리가 김관식 내외로부터 입은 은혜는 실로 적지 않았다. 예컨대 우리 내외가 얻어먹은 김치만도 실로 다섯 독이 넘을 정도였다.
罷場-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겨워 1970년 비로소 나는 《창작과 비평》에 작품을 발표했다. 10여년 간의 침묵 후인 셈이었다. 충주고등학교 때부터의 절친한 친구, 평론가 유종호의 소개로 시작된 작품활동이었다.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 이발소 앞에 서서 참외를 깎고 목로에 앉아 막걸리를 들이키면 모두들 한결같이 친구 같은 얼굴들 호남의 가뭄 얘기 조합 빚 얘기 약장사 기타 소리에 발장단을 치다 보면 왜 이렇게 자꾸만 서울이 그리워지나 어디를 들어가 섰다라도 벌일까 주머니를 털어 색시집에라도 갈까 학교 마당에들 모여 소주에 오징어를 찢다 어느새 긴 여름 해도 저물어 고무신 한 켤레 또는 조기 한 마리 들고 달이 환한 마찻길을 절뚝이는 파장5)
동네 어귀에서 한 손에 고무신 한 켤레를, 또 한 손에는 조기 한 마리를 들고, 술이 취해 비틀대며 오는 두 젊은이와 마주친 것이 <파장>을 쓰게 된 동기였다. “시인 신경림이 민중시의 물꼬를 텄다.” “이른바 그 동안 식자들이 입으로만 목청을 높였던 문학과 현실이 처음으로 하나의 육체를 만난 것은 신경림의 시를 통해서다. 한번 터진 그의 시의 봇물은 바닥을 모르고 솟구치고 있다.”듣기에 싫지는 않은 과찬들인 셈이었다.
민요를 찾아오면 서울 친구들이 밥과 술, 차비는 물론 생활비까지도 보조해 주었던지라 그러나 시에 있어서 이와 같은 제법 화려한 반응의 날들 속에서도, 가난의 굴레는 참으로 집요하게 나를 가두고 억눌러 왔다. 민요기행은 결국 그 때문에 시작된 것이리라. 충주 근방과 경북 쪽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충주사범학교 동창생들을 찾아다니며 민요를 취재했던 것이다. 민요를 찾아오면 서울에 있는 친구들이 밥과 술, 차비는 물론 생활비까지도 보조해주었던지라 나는 그 일에 열심이었다. 내 작품 역시 자연히 민중들의 애환을 문학의 거름으로 삼았다.
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 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달린 가설 무대 구경꾼이 돌아가고 난 텅 빈 운동장 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 학교 앞 소줏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 꽹과리를 앞장 세워 장거리로 나서면 따라붙어 악을 쓰는 건 조무래기들뿐 처녀애들은 기름집 담벽에 붙어서서 철없이 킬킬대는구나 보름달은 밝아 어떤 녀석은 꺽정이처럼 울부짖고 또 어떤 녀석은 서림이처럼 해해대지만 이까짓 산구석에 처박혀 발버둥친들 무엇하랴 비료값도 안 나오는 농사 따위야 아예 여편네에게나 맡겨두고 쇠전을 거쳐 도수장 앞에 와 돌 때 우리는 점점 신명이 난다 한 다리를 들고 날나리를 불꺼나 고개짓을 하고 어깨를 흔들거나6)
그러나, 첫 시집인 《농무》(1973)가 채 나오기도 전에 아내는 시름시름 앓아 눕더니 급기야는 위암으로 판명되어 한 많고 설움 많은 한 생애를 너무도 짧게 마감하고 말았다. 생각하면 분하고 원통한 일이었다. 평생을 가난에 치여 호강 한 번 못 하고 차마 감기지 않는 두 눈을 감았던 것이다. 그리고는 그 후로 계속하여 4년 뒤 할머니가 돌아가셨고, 채 1년이 되지 않아 중풍으로 누우셨던 아버님이 돌아가셨다. 이들 모두를 선영으로 모신 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고작 어눌한 시로 그때의 심정을 담아 내보는 것이었다.
어허 달구 어허 달구 바람이 세면 담 뒤에 숨고 물결이 거칠면 길을 옮겼다 꽃이 피던 날은 억울해 울다 재 넘어 장터에서 종일 취했다 어허 달구 어허 달구 사람이 산다는 일 잡초 같더라 밟히고 잘리고 짓뭉개졌다 한 철이 지나면 세상은 더 어두워 흙먼지 일어 온 하늘을 덮더라 어허 달구 어허 달구 차라리 한세월 장똘뱅이로 살았구나 저녁 햇살 서러운 파장 뒷골목 못 버린 미련이라 좌판을 거두고 이제 이 흙 속 죽음 되어 누웠다 어허 달구 어허 달구7)
목계장터 ─ 산서리 맵차거든 풀 속에 얼굴 묻고 민요기행을 더욱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물론 장시 <새재>를 준비하면서부터 였다. 이 시를 구성하면서는 내게 가장 많은 얘기와 노래를 들려주었고 또 가장 감동적이었던 창돌애비라는 반박수의 방법을 크게 참작했다. 그는 얘기 속에 노래를 섞기도 하고 노래 속에 얘기를 섞기도 하면서 줄거리를 이끌어가는 뛰어난 얘기꾼이요, 노래꾼이었는데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대목대목 청중을 얘기꾼과 노래꾼으로 동원하는 방법이었다. 나는 남한강 일대와 경북, 충북의 민요를 찾아다니기 시작했고, 직접 발굴한 민요가락을 시에 도입하는 시도를 하게 되었다. 투망을 어깨에 멘 아직 소년 티를 벗지 못한 젊은이 둘이 노랫가락을 흥얼대며 언덕 위로 올라오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 것도 그 무렵이었으리라. 그들을 보는 순간 나는 문득 실패한 내 두 편의 <목계장터>를 생각해 냈다. 그것들이 실패작이 되고 만 까닭을 이내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의 고유한 가락─그것이 빠져 있어서는 목계장터는 결코 한 편의 시로 될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하늘은 날더러 구름이 되라 하고 땅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네 청룡 흑룡 흩어져 비 개인 나루 잡초나 일깨우는 잔바람이 되라네 뱃길이라 서울 사흘 목계 나루에 아흐레 나흘 찾아 박가분 파는 가을볕도 서러운 방물장수 되라네 산은 날더러 들꽃이 되라 하고 강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산서리 맵차거든 풀 속에 얼굴 묻고 물여울 모질거든 바위 뒤에 붙으라네 민물 새우 끓어넘는 토방 툇마루 석삼년에 한 이레쯤 천치로 변해 짐부리고 앉아 쉬는 떠돌이가 되라네 하늘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고 산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8)
그 무렵, 나는 퍽 민요에 열중했었다. 민요가 보여주는 민중의 참 삶의 모습, 민중의 원한과 분노, 지배계층에 대한 비판과 풍자는 원래의 동기와는 관계없이 차츰 나를 민요 속으로 잡아끌었던 것이다.
민요연구회─갈 곳 없는 친구들, 이웃들을 모아 신나는 놀이판을 벌여 1980년 5월, 그 시기를 전후하여 양심적 지식인들이 투옥되었다. 그해 7월, 나 역시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에 연루되어 서대문 구치소에 수감이 되었다. 이 사건에 연루되어 투옥된 문인들로는 고은, 송기원, 조태일, 구중서 그리고 내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런 시대적 배경 속에서 나의 민요에 대한 관심은 사적인 것에서 공적인 것으로 심화 확대되어 가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광주항쟁 직후에 후배 유해정 등과 함께 민요연구회(1984년~1989년)를 만든 것이 그것이다. 이 모임을 만든 목적은 두 가지가 있었다. 첫째는 우리 사회를 오염시켰던 미국 문화와 일본 문화에 대항하여 건강한 우리 문화를 만들어 보자는 것이었고, 둘째는 80년대의 대탄압으로 철저하게 봉쇄당한 사람들의 공간을 확보해보자는 것이었다. 민요연구회는 한 달에 한 번씩 모임을 가져 갈 곳 없는 친구들과 동지들, 이웃들을 모아 신나는 놀이판을 벌였다. 여기서 듣는 노래들은 내가 어려서 장꾼들한테서, 빗장수 체장수 아낙네들한테서, 퉁수를 잘 부는 당숙한테서, 또는 강물 위를 떠가던 땟목꾼한테서 듣던 노래와 본질적으로 다른 것일 수 없었다. 이렇게해서 민요기행은 보다 전문적으로 행해지게 되었는데, 그때 내가 채집한 민요가락을 넣어 쓴 시들이 바로 시집 《달넘세》(85)에 들어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나는 이 시집을 엮고 난 뒤, 내 시에 대해 실망을 금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나의 시가 내가 보기에도 민요라는 틀에 너무 얽매여, 살아 있는 말을 잃었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말하자면 민요라는 형식과 가락의 매력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시의 탄력성을 잃게 되었다는 자각이 든 것이다. 남원의 한 판소리꾼을 만난 것은 그런 미궁의 심정 속에서 였다. 한 민요연구가의 권유로 만난 그는 그 지방의 명인이었다. “20년 가까이 공부를 했는데도 영 소리가 안 되는 거요. 그래서 에라 모르겠다, 공부한 것 다 버렸지. 아예 20년 공부를 안 한 것으로 치고 멋대로 소리를 내보았지. 그러니까 비로소 소리가 돼 나오더라고.”그 말은 너무도 신선한 충격이었다. 나 역시 민요에서 해방된 느낌으로 시를 써봤다. 요컨대 나는 민요에서 해방됨으로써 오히려 민요를 터득할 수 있었던 것이다.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소리 매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소리도 그려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 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9)
네 번째 시집 《가난한 사랑 노래》(88)에 실린 시다. 그 이전의 시들이 주로 농촌을 배경으로 민중적 서정을 가다듬어 온 것이라면, 이 시들은 도시 변두리에 위치한 외곽지대 빈민들의 삶을 끌어안으려고 노력한 결실이라고나 할까.
민요기행이 낳은 기행시집 《길》 《가난한 사랑노래》를 펴낸 지 2년만에 다시 제5집 《길》(90)을 발간했다. 내 자신이 민요기행을 다니는 과정에서 착상을 얻고 있으므로 시집의 표제에서부터 <기행시집>으로 못박았다.
사람들은 자기들이 길 만든 줄 알지만 길은 순순히 사람들의 뜻을 좇지는 않는다 사람을 끌고 가다가 문득 벼랑 앞에 세워 낭패시키는가 하면 큰 물에 우정 제 허리를 동강내어 사람이 부득이 저를 버리게 만들기도 한다 사람들은 이것이 다 사람이 만든 길이 거꾸로 사람들한테 세상 사는 슬기를 가르치는 거라고 말한다 길이 사람을 밖으로 불러내어 온갖 곳 온갖 사람살이를 구경시키는 것도 세상 사는 이치를 가르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그래서 길의 뜻이 거기 있는 줄로만 알지 길이 사람을 밖에서 안으로 끌고 들어가 스스로를 깊이 들여다보게 한다는 것은 모른다 길이 밖으로가 아니라 안으로 나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에게만 길은 고분고분해서 꽃으로 제 몸을 수놓아 향기를 더하기도 하고 그것을 알고 나서야 사람들은 비로소 자기들이 길을 만들었다고 말하지 않는다10)
이 시를 계기로 나는 더 많이 밖으로 향해 있던 내 눈을 안으로 돌리게도 되었으며, 시란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성격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신시인 근황은 월 2~3회에 걸쳐 전국 각 지역을 순회하며 내 자신 그 출신이기도 한 밑바닥인생들의 신산스러운 삶을 귀기울여 듣고 기록하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1996년 2월호)
주 1) 詩 <눈길>에서 주 2) 詩 <갈대>에서 주 3) 詩 <폐광>에서 주 4) 詩 <산1번지>에서 주 5) 詩 <罷場>에서 주 6) 詩 <농무)에서 주 7) 詩 <어허달구>에서 주 8) 詩 <목계장터>에서 주 9) 詩 <가난한 사랑노래>에서 주 10) 詩 <길>에서 |